"밖을 다니다 보면 외부 사람들이 인천을 ‘빈티지’라고 표현해요. 곱씹어 생각해 보면 씁쓸하죠. 우리 인천이 얼마나 낙후된 이미지로 인식되면 그런 얘기가 나올까. 옛것을 살리면서 차별화된 특색을 입히고, 사람이 모여 활기를 띠는 만부마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양순식(53·여)만부마을 주민활동가 대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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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티지(vintage)’란 원래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를 수확하고 와인을 만든 해’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오래돼도 새로운 것’ 혹은 ‘오래돼도 가치 있는 것’을 뜻한다.

 양 대표는 1970년대 철거민들의 이주로 시작된 만부마을의 역사를 이어가는 주민들이 새롭게 화합하는 마을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그가 만부마을에 정착한 것은 1974년이다. 양 씨의 가정은 부친의 사업 실패로 경제사정이 기울었다.

 "우리집은 마을의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철거민은 아니에요.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서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홀딱 망하면서 아홉 식구가 살 수 있는 공간으로 옮겨왔어요. 여럿이 서울의 단칸방에서 살기 힘드니 집값이 싸고 넓은 곳으로 찾아온 거죠."


 2013년부터 만부마을의 변화를 위해 활동을 시작한 그에게 계기가 무엇인지 물었다.

 "어느 순간부터 원도심 재생사업, 낙후마을 재개발 같은 얘기들이 돌았어요. 그런데 동네분들이 무슨 말인지 감을 잡지 못하시더라고요. 어찌 보면 당연해요. 사실 마을 주민들에게 개발이라는 단어는 어색하거든요. 개발로 밀려난 아픔은 있어도 우리 동네의 모습이 바뀌고 그로 인해 나의 삶이 어떤 혜택을 받는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던 일이죠. 그래서 제가 나서 주민들에게 사업이 무엇인지, 어떠한 변화가 예상되는지 알려 드리기 시작했죠."

 그는 마을활동가로 나서기 시작한 초창기에 주민들의 오해를 사는 일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뉴딜사업에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될 것이라는 얘기가 퍼지고, 양 씨가 열성적으로 뛰어다니다 보니 ‘돈 벌려고 팔을 걷고 나서는 것 아니냐’는 주민들의 볼멘소리를 듣기 일쑤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도둑’이라고 욕도 많이 먹었어요. 진정성을 보이면 불만 있는 주민들도 결국엔 알아주실 것이라는 마음으로 더욱더 적극적으로 다가가 사업을 설명했죠. 작은 것부터 시작했어요. 어르신들이 잠시 쉴 수 있는 평상을 놔 드리고, 삭막한 분위기가 나는 길가에는 꽃을 심고. 그렇게 마음고생을 했지만 꾸준히 마을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노력하니 오해를 푸시더군요. 이제는 저를 먼저 찾으시죠."

 양 씨는 건축 인테리어 관련 사업을 하고 있지만 마을의 일이 우선이다. 생업을 위해 일을 하다가도 마을 곳곳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난다.

 "사업을 온라인 중심으로 바꿨어요. 그래서 중년의 나이지만 젊은이들보다 최신 IT기기를 더 많이 가지고 있고, 사용법에도 능숙하다고 자부합니다. 견적서 작성이나 고객에게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나 항상 가지고 다니는 IT기기로 처리하다 보니 마을 사업에 더욱 매진할 수 있어요."

 그는 자신의 관심사로 피어나고 발견한 재능을 만부마을 주민들과 재생사업을 위해 모두 쏟기로 했다.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통하고 여가생활을 공유하는 데 양 씨의 역할이 크다.

 "타고난 성격이 그런 것인지, 무엇이든 궁금하면 직접 해 보고 느껴 봐야 해요. 그러다 보니 천연염색과 캘리그래피 같은 취미를 가지게 됐어요. 이후 제 취미를 재능기부하며 동네 주민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죠. 처음에는 귀찮아하시던 분들이 어느 순간 저를 따로 불러 새벽이 되도록 천연염색 제품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셨어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주민들을 모이게 해야겠다고. 그래서 이제는 매주 한 차례 시간을 정하고 도시재생지원센터에 모여 천연염색 제품을 만들며 이야기꽃을 피운답니다."

 이 같은 양 씨의 노력으로 만부마을 지원센터는 자연스레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도시재생사업의 정보를 전달하는 창구로 자리잡게 됐다. 아울러 천연염색 제품이나 전시가 가능할 정도의 캘리그래피 결과물이 나오자 만부마을은 협동조합을 꾸리기로 했다. 재생사업과 함께 마을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겼다.

 "일반적인 협동조합이 아니고 마을관리 협동조합이니 공동주택이나 행복주택 관리를 저희한테 맡겨 주면 일자리 창출과 연계시키겠다는 생각이에요. 뉴딜사업이 진행되면서 건물을 짓는다면 최소 6개월에서 2년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죠. 그동안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닌 부수적인 걸로 주민들이 뭉쳐 무언가를 해 보자고 한 것이 지금 천연염색 배우기 교실을 통해 나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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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부마을 관리협동조합(가칭)은 지난해 12월 관계 기관에 인가 신청을 접수하고 현장심사를 완료한 상태다. 지금은 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천연염색은 제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지만, 마을사업과 연계시키면 수익 창출 활로가 될 수 있다고 봤어요. 요즘 영·유아나 초등학생들이 아토피 같은 피부 문제로 어려움을 많이 겪어요.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런 아이를 보면서 일반적인 염색제품보다 조금 더 비싸더라도 피부가 숨 쉴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하거든요. 그래서 내복, 생활용품, 액세서리 등 천연염색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천연염색 교육 프로그램 사업도 구상하고 있어요."

 양 씨는 올해부터 천군만마를 얻어 짐을 덜고 다시 한 번 힘을 낼 계획이다. 주민협의체에서 총무와 부대표로 있던 마을 주민 2명이 신참 마을활동가로 임명돼 함께 길을 걷기로 했다. 만부마을에 터를 잡은 지 12년째를 맞은 이경순(61·여)씨와 그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마을 선배인 25년 차 주민 손미자(56·여)씨가 올해부터 주민활동가로 합류했다.

 이들은 만부마을을 산자락 아래 공기 좋고 정이 흐르는 곳이라고 입을 모아 자랑한다. 그들이 꿈꾸는 만부마을 도시재생사업의 핵심을 짚었다.

 "우리 마을 재생의 핵심은 ‘순환’이에요. 주민협의체와 일부 주민들이 끌고 온 사업이 이제 모든 주민들의 사업이 됐어요.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는 것을 공유하고 전파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가 순환하듯이, 주민들이 마을에 가진 애착이 돌고 돌아 모두가 공감하고 만족하는 미래 만부마을이 되길 바랍니다. 추가로 타지에서 온 손님에게서 ‘만부마을, 참 흥미롭고 재밌는 마을이더라’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장원석 인턴기자 stone@kihoilbo.co.kr

  사진=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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