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혹됐다’는 말이 한때 유행처럼 번졌다. 현혹(眩惑)은 뭔가에 정신을 빼앗겨 주체성을 갖기 힘든 상태를 의미한다. 이 말이 세간에 화제가 된 것은 ‘곡성(哭聲)’이란 영화가 3년 전에 상영되면서부터다. ‘곡소리’라는 제목을 단 이 영화는 사람에 대한 ‘믿음’에 관해 집요하게 파고 든다. 그 결과, 이 영화 출시 후 많은 관객들에게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의 전환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는 신(神)의 대체재인 다양한 초월적 능력을 가진 영매(靈媒)들을 등장시킨다. 순박한 인간은 이 영매들의 말과 행동, 그가 제시하는 세계관에 현혹되기 일쑤다. 영매들이 과거와 미래를 내다보며 현재를 기가 막히게 진단해서다. 그러면서 자신이 최선(最善)이라는 입장을 유지한다. ‘나를 믿어 보라’는 미끼를 던진 것이다. 보통의 인간은 가장 좋은 선을 제시하는 영매들 사이에서 믿음과 의심을 반복하지만 겉모습과 실체를 분간하는데 실패한다. 결국 보통 사람인 이 영화의 주인공도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는 극도의 혼란 속에서 영화를 마무리한다.

이 같은 영매들은 영화 속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아주 가까이 있다. 특히 지나 온 역사를 개인의 경험으로 특정분야에 축적한 소위 전문가들에게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 사실상 통상적 인간을 가장한 영매에 가까운 인간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이 전문가들을 도사 또는 귀신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속 영매들이 그러하듯 일상 생활 속에서 만나는 살아 있는 영매들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내다본다. 그러면서 ‘자신이 최선’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이를 순박한 영혼들에게 관철시킨다.

하지만 막상 그 안을 들여다 보면 파편적 지식과 분절된 경험, 망상적 사고가 영매의 신념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자신의 세계관에 보통의 영혼들을 가두고 현혹하려는 주술(呪術)을 부리는 셈이다. 숫한 영매들 사이에서 우리네 보통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영화 속 주인공의 실천 정도를 넘어서야 한다. 매 순간 옳은 판단을 하려고 하고 진심으로 뭔가를 갈구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던 주인공의 시도를 넘어서 객관적 시선을 유지한 채 영매가 던진 미끼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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