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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올해 벽두부터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일제의 국권침탈 이후 숨죽였던 민족운동은 1919년 3월 1일 거족적인 항일운동으로 폭발했다. 서울에서의 독립선언과 만세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돼 갔고, 해외 동포들도 각지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인천에서도 이러한 대대적인 항일독립운동의 열기에 힘입어 인천, 부평, 강화, 옹진 등 전 지역에서 수많은 군중이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동참했다.

인천은 개항 이래 일제 식민지 건설의 전초 기지였고 합병 후에도 이미 구축된 일본의 세력이 여타의 지방보다 공고하였지만, 인천에서의 만세 시위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됐다.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 및 태극기 배포, 학생들의 동맹휴학과 학생들의 동정을 살피려 했던 전화선의 절단 등으로부터 시가지 대로상의 만세시위, 5일장에서의 장터 만세시위, 야간 산상의 봉화 및 횃불 시위, 상점 문을 걸어 잠근 상인들의 철시시위, 친일파 색출 시위, 종교인들의 시위, 운동회를 겸한 시위 등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전 계층이 다양한 형태로 참여했다.

국내외 각지에서는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민족운동의 최고 지도부로서 ‘임시정부’를 수립하려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민족대표 33인에 의해 상하이에 파견된 현순은 국내의 이규갑에게 편지를 보내 ‘국민대회’를 열어 임시정부 수립을 재촉했다. 3월 17일 이규갑은 홍진, 한남수, 김사국 등 동지를 규합해 현직 검사 한성오의 집에서 4월 2일 인천 만국공원에서 ‘13도 대표자대회’를 열고, 임시정부를 수립해 이를 국민에게 공포하기로 결의했다.

각 도 대표들이 민주적으로 결의하면 조선 국민 전체 의견으로 봐도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회의에서 전국적인 연락과 조직 실무는 홍진에게 주어졌다. 4월 2일 그즈음 인천에서는 상가 철시 협박 전단이 뿌려진 상태여서 치안이 삼엄한 상태였고, 인천역에서 마찬가지였다. 오후 3시께 그들은 노천에서 다수 집단이 모이기보다는 은밀한 실내에서 모이는 것이 안전하다 생각하고 ‘어떤 음식점의 조용한 방’ 하나를 빌려서 음식을 시켜 먹으며 논의했다. 그때 토의한 내용의 골자는 ‘우리가 만든 임시정부를 어떤 절차와 방법을 통해 발표하느냐 그리고 국민대회를 여는데 있어서의 인구 동원 문제와 지방조직의 강화 문제 등’이었다.

그러나, 한성정부의 수립을 결정하고 선포하기에 앞서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됐는지의 여부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개진됨에 따라 4월 중순께 홍진과 이규갑은 한성정부 조직안을 담뱃갑과 성냥갑 속에 감추고 상하이로 출발했다. 국민대회와 한성정부 수립을 선포하는 일은 김사국, 현석칠 등 학생 조직에게 인계됐는데 이들은 4월 23일 서울 서린동 봉춘관(逢春館)에서 24명으로 조직된 전국 13도 대표 국민회의를 개최해 한성임시정부의 수립을 만천하에 알렸다. 하지만 3월 17일 노령의 대한국민의회와 4월 11일 상하이임시정부가 이미 조직된 이후였다.

3개 임시정부의 과제는 ‘통합’이었다.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는 독립전쟁을 치르기 좋은 위치였지만 일본의 공세에 노출돼 있었고, 중국의 상하이임시정부는 정치 활동이 자유로웠지만 국내에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거리가 너무 멀었다. 반면 한성임시정부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정통성은 컸지만 서울에 있어 정치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들의 대통합은 9월 11일 이뤄졌다. 상하이의 임시정부와 노령의 대한국민의회가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성정부의 ‘정통성’에 의미를 부여했고, 정부 위치는 교통이 편리하고 외교활동이 비교적 더 보장된 상하이로 합의했다.

임시정부 100년을 맞는 현시점에서 만국공원에서의 전국 13도 대표자회의가 주목되는 것은 한성정부의 골격이 여기에서 이뤄졌고 그것이 통합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근대 최초의 서구식공원 만국공원은 인천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역사적 사실을 통해 인천인의 자긍심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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