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 100주년을 하루 앞둔 10일 오전 평택시 안중읍에서 만난 일제의 강제징용 피해자 고(故) 이수명 씨의 딸 이경옥(63·여)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평택=홍승남 기자 nam1432@kihoilbo.co.kr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폭을 맞아 후유증이 생긴 아버지의 영향으로 온 가족이 심각한 간접피해를 입었는데도 후손들에 대한 지원은 없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 100주년을 하루 앞둔 10일 오전 10시께 평택시 안중읍에서 만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고(故) 이수명 씨의 딸 이경옥(63·사진)씨는 "강제징용 피해자의 후손으로 살면서 겪었던 후유증과 일가족 전부가 질병에 시달렸던 삶만 생각하면 울분이 차오른다"며 정부의 소홀한 대우에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당시 열아홉 살의 젊은 청년이었던 이 씨의 아버지는 1939년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징용돼 히로시마에서 일하다가 원폭 투하로 건물에 가득한 시신 더미에서 간신히 기어나와 한국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한국으로 돌아온 이 씨가 평생을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며 원폭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치매 등을 앓았고, 어머니 고(故) 장예순 씨 역시 그런 아버지를 보며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점이다.

이러한 가정에서 아버지 이 씨가 10년 만에 가진 딸이 이경옥 씨다. 이 씨의 삶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20여 년 전 진단받은 조울증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조울증에 걸린 이유를 아버지가 당한 피폭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 씨는 한 달에 한 번씩 나오는 국민연금 80만 원이 생활비의 전부다. 이 중 10만 원은 조울증 약을 복용하는 데 사용된다.

이 씨는 "아버지의 피폭이 후손에게 전이되면서 발생한 조울증으로 수십 년간 말 못 할 고통을 겪고 있다"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후손 중에서는 다양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많다. 이들을 하루라도 빨리 살려줬으면 좋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처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원폭 피해 등이 세대를 거쳐 후손들에게 신체적·경제적 고통으로 대물림되고 있다.

정부의 특별법이 일제 강제징용 당사자인 1세대에만 국한해 의료비 지원 등의 국가 차원의 혜택을 제공하면서 법 개정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4년 발표한 ‘원폭 피해자 2세의 기초현황과 건강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원폭 피해자 2세의 심근경색·우울증·천식·조현병·빈혈·위궤양 등의 발병률이 일반인보다 최소 14배에서 88배까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는 일제 원폭 피해자 1천92가구의 자녀 4천90명을 대상으로 우편설문조사를 통해서만 이뤄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회에서는 일제 원폭 피해자 후손에 대한 전방위적인 실태조사와 의료 지원을 하는 내용을 포함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다만, 경기도의회가 이러한 후손들의 처지를 고려해 2·3세대까지 혜택을 확대한 ‘경기도 원폭 피해자 지원 조례’ 마련을 준비 중이다.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 최봉태 위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후손들의 피폭에 대한 간접피해 영향을 분석한 자료가 기존에 발표돼 있는 만큼 심각한 질병을 지닌 후손들에 대해 긴급한 의료 지원을 하는 등 구호조치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현 기자 qw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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