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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최근 중국 TV와 온라인에서 사극(史劇)이 얼어붙었다는 보도가 화제다. 작년 여름 대륙을 사로잡았던 ‘연희공략(延禧攻略)’, ‘여의전(如懿傳)’이라는 사극 드라마 두 편이 무려 총재생 수 150억 회를 넘겨 사극 드라마의 제작 붐이 일어난 점에 비춰보면 화제의 대상이 된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연희공략’이 청의 건륭제 시기에 한 소녀가 궁녀였던 언니의 죽음을 계기로 궁궐에 들어간 뒤 온갖 음모와 계략을 뚫고 귀비(貴妃)의 지위에 오른다는 내용이고, ‘여의전’ 역시 건륭제 시기에 궁녀들의 암투와 음모를 그렸다는 데 있다. 이 두 드라마가 인기를 모으고 있을 때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은 "오락성을 위해 역사를 마음대로 희화화하거나 왜곡해서는 안된다"며 "역사적 허무주의를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올 1월 베이징일보는 ‘연희공략과 여의전의 5대 죄상’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두 드라마가 황족 생활 추종, 사치향락 조장, 건전한 정신 약화, 상회 분위기 악화 등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격렬히 질타하기도 했다.

 결국 사극이라는 미명하에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사실을 만들어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꼼수와 악랄한 방법을 쓴들 어떠랴 하는 제작진의 흥행성 위주 방침에 일대 경종을 울린 것이다.

 특히 이런 사극은 청소년들이 허구를 역사적 사실로 믿게 하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대해서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사극이 그리는 노골적인 궁중 암투가 중난하이(中南海: 중국 공산당 최고위 지도자들의 집무실·관저가 몰려 있는 곳) 내부의 권력 투쟁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분석을 내놓았고, 한국 등 일부 언론은 "중국 시진핑 정권이 대중문화를 통제하고 옥죄려는 의도"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한오령(限娛令: 황금 시간대에 오락물을 방영하는 걸 금지한다), 한수령(限酬令: 인기가 있다고 엄청난 고액의 출연료를 주는 걸 금지한다) 등으로 문화 통제를 하려는 것이라는 비난성 논평을 하기도 했다.

 물론 중국 공산당은 대중문화를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과 문화를 강화하고 해외문화의 침투와 범람을 막기 위한 선전·선동을 강화하고 있어 중국 특색 사회주의 가치관으로부터 한눈을 파는 것 자체를 용인하지 않으려 하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점은 몇 년 전 사드 보복 차원에서 한한령(限韓令: 한국산 문화콘텐츠의 수입 및 방영 금지)를 내리고 시치미를 뗐던 광전총국에 대한 국내외의 반감에 편승해 규탄의 대상이 되는 듯하다. 하지만 미국이나 한국 등의 보도 태도가 당연시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재미만 있다면, 시청률을 높일 수만 있다면, 돈벌이가 된다고 한다면 역사적 사실 따위는 어떻든 최대한 비틀고 꿰맞춰 허구를 만들어내고 인기배우와 화려한 생활 모습을 화면에 담아 방영하는 것이 온당한가? 우리 역시 과거에 무분별한 인기 사극 드라마로 역사적 허무주의를 조장하고, 궁궐에서 모략과 암투의 살벌한 투쟁이 미화돼 해악을 끼친 바가 있다. 당시 역사학자들은 최소한 역사적 사실을 30% 정도라도 지켜야 한다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대중문화가 역사적 사실을 교육하는 장(場)은 분명 아니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역사를 날조하며 거짓을 조장하는 일과 다를 바 없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굳이 역사를 빙자(?)해 그런 제작 태도를 유지하려는 건 베이징일보의 지적처럼 건전한 정신문화에 해악을 끼치는 반사회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3·1만세운동과 상하이 임시정부 100주년의 뜻있는 올해,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제 식민시대에 대한 반성과 되새김의 우리에게도 시사해주는 바가 적지 않다. 역사는 비틀어도 곤란하고 미화시키는 일도 분명 거부해야 한다.

 특히 어떤 특정한 의도를 갖고 꼼수로 처리하는 태도는 배격해야 마땅하다. 더구나 인물의 이미지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드라마를 통해 굳어지게 되고 강렬한 느낌을 주게 마련이다. 최소한의 마지노선이 30%라는 것도 수긍하기 어렵다. 중국 광전총국의 사극 드라마에 대한 여러 조치를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우리도 타산지석으로 삼아 사극에 대한 신중함을 함께 생각해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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