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태호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11일 인천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 세월호 추모관에서 참사 5주년을 맞아 세월호에 대한 원인 규명을 강조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노란 리본이 붙여져 있는 추모관 내 일반인 희생자 봉안함.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 전태호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11일 인천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 세월호 추모관에서 참사 5주년을 맞아 세월호에 대한 원인 규명을 강조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노란 리본이 붙여져 있는 추모관 내 일반인 희생자 봉안함.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짙푸른 초목 사이로 벚꽃들이 아직 여물지 않은 분홍색 얼굴을 내민다. 5년 전 그때처럼 따뜻한 햇살이 비추던 12일 인천시 부평구 부평승화원에 위치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을 찾았다.

추모관을 들어서니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던 세월호의 축소 모형이 보인다. 선체 내부까지 보이도록 자세하게 구현된 세월호는 두 손에 들려 노란색 리본의 바다 위에 떠 있다. 그 앞에는 각 층별로 사고 전 CCTV에서 촬영된 승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모니터도 설치돼 있다.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단원고 여학생들, 단체룸 곳곳에서 신발을 벗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일반인 승객들은 5년 전 그때 행복한 순간에 아직 머물러 있다. 추모관 벽면에는 희생자들의 유품이 유리벽 안에 놓여 있다. 백색 형광등 빛과 어둠에 묻혀 보이는 녹슨 동전, 폴더 휴대전화기, 지갑, 책, 신분증, 안경, 거울과 머리빗, 그리고 갓난아기 사진이 걸려 있는 부식된 열쇠고리는 영영 주인을 만날 수 없다.

"벌써 5년이 지났나요? 우리는 그렇게까지 시간이 지난 것 같지 않아요. 어제, 엊그제 일 같죠. 저희 아버지는 한 10년 동안 반년 정도는 미국의 누나 집에, 나머지는 한국에서 계셨어요. 지금도 아버지가 ‘언제 비행기로 들어간다’라고 전화를 줄 것만 같아요. 어디 나갔다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은 기분이죠."

추모관 3층 유가족 사무실에서 만난 전태호(43)씨의 아버지는 당시 지인 4명과 함께 제주도로 자전거 국토대장정을 떠났다. 제주도 올레길만 완주하면 자전거로 일명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5명 중 4명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사고 이후 생업을 접고 일반인 희생자를 대표해 진상 규명과 다른 유가족들을 위한 일들을 하고 있다.

이날도 인천시와 트라우마센터 건립를 위한 회의가 예정돼 있었다. 경기도 안산시에는 세월호 유가족 등을 위한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가 설치돼 있지만 17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인천에는 그들의 마음을 치유해 줄 곳이 없다. 유가족들은 해마다 3월이 다가오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참사는 4월에 있었지만 매년 3월부터 서서히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짓누르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점점 더 마음을 옥죄온다. 그들의 바람은 하나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찾고자 함이다.

전태호 씨는 "모든 관심이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가’에 맞춰 있지만 우리는 ‘배가 침몰할 때 왜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살리지 않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며 "이 문제를 밝히게 되면 자연스럽게 침몰 원인도 나오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세월호 사고 초기부터 원인 규명을 위해 영상 등 자료 분석을 담당했던 황민구(37) 법영상분석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각종 증거들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황 소장은 "세월호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는 정부가 없다고 한 자료를 나중에 제출하거나 있는 영상도 보안을 이유로 제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10년, 20년이 지나더라도 잊지 말고 인적·물적자원을 아끼지 말고 투입해 원인을 밝혀야 다음에 세월호와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병기 기자 rove0524@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키워드

#세월호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