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음(痛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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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음(痛飮)
홍순목
  • 기호일보
  • 승인 2019.04.22
  •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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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순목<PEN리더십 연구소 대표>
‘니들 아버지는 그때 뭐하셨지?’라는 손혜원 국회의원의 물음은 문득 나를 어릴 적 시절의 까마득한 기억 속으로 이끌어 준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며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내게, 고층 건물들로 번화한 도시 가운데 첨단기기와 유례 없는 풍요로움 속에 살면서도 어딘가 공허함 속에 살고 있는 내게, 그리고 불안정한 국제정세와 국내 경제상황에 더해 늘어나는 미세먼지와 질병의 공포 등으로 미래에 대한 복잡한 생각이 늘 머리와 가슴을 점령하고 있는 내게, 그녀의 물음은 블랙홀과 같이 나를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빨아들이기에 충분했다.

 나의 아버지는 술을 참 좋아하셨다. 1960∼70년대는 농사를 짓던 시절에 막걸리 한 사발로 고됨을 잠시나마 잊던 때일 게다.

 산에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이면 논에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어머님은 부지런히 새참과 점심을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막걸리가 그득한 주전자를 들고 집과 논을 오가셨다. 논두렁에 앉아 밥과 함께 마시는 막걸리 한 사발의 맛을 나는 아직 모른다.

 70년대 말 40대 초반에 아버지는 인천에서 정부미만 취급하는 농협공판장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가게를 차리셨는데 20㎏ 쌀 한 포대를 팔면 200원이 남는다고 했다.

 그때 널리 회자됐던 ‘도시에서는 눈만 감았다 하면 코를 베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시생활이 빡빡하던 때다. 시골 동네에서는 누가 도시로 나갔다가 쫄딱 망하고 다시 돌아왔다는 소문이 무성하던 때이기도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 4남매 앞에서 변변한 반찬을 상에 올리지 못하는 것을 늘 미안해 하셨다. 망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면 동네 창피거리가 되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도 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을 드셨던 기억이 나는데 중학생 어린 나이에 거의 매일 술을 드시던 아버지를 보면서 ‘왜 저리도 술을 많이 드시는가?’하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 그 어린 나이에 나이 드신 아버지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었겠는가?

 어느덧 내 나이 40을 지나 50대 초반.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당시에는 모두가 넉넉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열심히 일을 하면 무언가 일궈낼 수 있는 시기였다. 고된 농사일 속에서의 막걸리 한 잔은 아버지에게 활력소였으리라.

 낯선 도시 인천에서 자식들을 공부시키며 이문이 많지 않은 장사를 시작하면서 느껴지는 중압감에 소주를 들이키셨을 터였다. 그래도 그때는 행복이 있었다. 일은 고되고 없이 시작했지만 작은 것이나마 하나하나 마련해 나가는 기쁨이 있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분노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개인의 노력을 뛰어 넘어 서민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과도한 최저임금 상승으로 소상공인들은 고객과 종업원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청와대의 고위직 인사가 노후 대책 마련을 위해 거액의 대출을 받아 재개발지역 부동산을 매입하고 국토부 장관 지명자는 요지의 아파트를 분양 받아 10여 억의 차익을 챙기는 동안 대다수 국민들은 강남 집값 잡겠다며 채운 각종 금융규제의 족쇄로 가정의 행복마저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헌법재판관 후보는 자신의 재판과 관련된 회사의 주식을 거액을 들여 사들였다고 한다. "니들 아버지는 뭐하셨지?"라고 한 손혜원 국회의원의 부친은 국회의원 딸의 영향력으로 규정을 바꿔가며 국가유공자가 됐다고 한다.

 이들을 보면서 희망의 싹을 하나씩 솎아 내야만 하는 아픔을 느끼지 않는 이 누구일까.

 이제 그녀의 물음에 답해야 한다. 나의 아버지는 약주를 많이 드셨다. 그리고 나는 나의 아버지와 달리 당신과 공평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내걸고 탄생한 현 정부의 반대되는 행보에 허탈해하며 통음(痛飮)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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