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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최근 핀란드의 한 대학 연구팀이 2004~2018년 사이에 여러 나라에서 발표된 10대들의 운동량에 관한 27개 연구 논문을 분석해 발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10대들은 초등학교 초기부터 신체활동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몸을 움직이는 일을 싫어하게 되면서 게으른 습관이 점점 몸에 익숙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행동이나 일 처리가 느리고 일하기 싫어하는 버릇이나 성미를 게으르다고 한다.

게으름과 관련이 있는 속담이 많은 것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특히 게으른 것을 싫어했던 것 같다.

"게으른 선비 책장 넘기기, 게으른 놈 밭고랑 세듯, 풀베기 싫어하는 놈 풀단만 센다, 게으른 여편네 아이 핑계한다"와 같은 속담들이 바로 그것이다.

해야 할 일에 전념하기는커녕 그 일에서 벗어날 궁리만 하거나, 핑계를 대는 모습이 속담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또 다른 속담 중에는 "게으른 놈 7월에 후회한다"라는 것도 있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이른 봄부터 시기적절하게 차근차근 일을 해 나가야 하는데,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결실을 눈앞에 둔 7월에 이르러서야 아차! 잘못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농사는 보통 7월이면 그해의 작황이 어느 정도일지 대충 알 수 있는데,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질 않았으니 수확이 제대로 될 리 없고 뒤늦게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고 후회하게 된다는 뜻이다.

농사를 빗댄 속담이지만 삶 전체를 돌아보게 한다.

실제로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게으름을 피우는 아이에게 어르신들이 날리시던 가장 심한 말씀 중의 하나는 "밥도 빌어먹지 못할 녀석"이었다. 그만큼 ‘게으름’이란 우리 민족의 정서상 용서받지 못할 죄악과도 같은 것이었다.

게으름을 죄악시하는 것은 우리 조상들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성서 잠언에서는 "너 게으름뱅이야, 개미에게 가서 그 사는 모습을 보고 지혜로워져라"며 게으름의 죄를 분명히 하며 꾸짖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불경의 법구경에서도 "게으름에 빠지지 말라, 게으르지 않고 생각이 깊은 사람만 큰 즐거움을 얻게 되리라. 게으른 무리 중에서 부지런하고, 잠든 사람 가운데서 깨어 있는 현자는 빨리 뛰는 말이 느린 말을 앞지르듯이 앞으로 나아간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서도 막상 실행에는 차일피일(此日彼日)하며 늘 게으름을 피우곤 하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임에도 잘 고쳐지진 않는다.

철학자 몽테뉴가 습관을 제2의 천성이라고 한 것처럼 게으름이 아예 습관으로 굳어져버린 게 아닌지 모르겠다.

하긴 늘 부지런하게 움직이면서 바쁘게 살다 보면 어느 날 불현듯 ‘내가 왜 살지?’하는 회의에 빠질 때가 있긴 하다. 그럴 때는 한두 번쯤 게으름을 피워도 좋을 것이다. 그런 게으름은 달콤하기까지 해서 삶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문제는 그렇게 달콤한 게으름을 즐기다 보면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그 게으름이 습관으로 굳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헨리 포드는 "일만 하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고, 쉴 줄만 알고 일할 줄 모르는 사람은 모터 없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아무 쓸모가 없다"라고 말했다.

사실 옛날과 다르게 요즈음은 게으름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나 판단이 달라졌다.

하루 종일 노는 것 같으면서도 거뜬히 자기 일을 잘 해내는 사람에게 게으르다고 할 수는 없다. 반면에 야근, 특근까지 하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도 해내는 일이 하나도 없다면 그런 사람을 부지런하다고 평가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게으름이나 부지런함의 판단이 상황이나 결과에 따라서 다르게 평가될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핀란드 대학 연구팀의 한 연구원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생활 태도는 부모의 생활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며 "게으른 습관은 길러지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활동적인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코 힘든 일이 아니다. 그는 학교 정규 수업 외에 스포츠나 청소년단체 활동과 같은 다양한 과외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게 하라고 강조한다. 어려서부터 신체활동을 활발하게 해야 성인이 돼서도 활동적인 생활 방식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온 가족이 TV 앞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매일 가까운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을 찾아 걷기라도 해보자.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신체활동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내 아이가 성인이 돼 활동적이고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하려면 어릴 때부터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른 행동이 어려서부터 시작된다는 연구 결과가 아니더라도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우리 속담은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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