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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경남 진주에서 발생한 방화·살인 사건이나 경북 영양에서 경찰관이 숨진 사건의 공통점은 범인이 폭력 전과가 있다는 점인데 정신질환 쪽으로 향하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진주 사건의 안 아무개 씨는 범행 당시 힘없고 약한 사람만을 골라 공격하는 분별력을 보였다. 설령 정신질환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폭력 전과는 간과해서 안될 일이었다. 병이 있든 없든 그는 위험 인물이었다. 자활센터 직원 폭행, 층간 소음 시비, 오물 투척, 이웃 주민과 다툼, 술집 주인 폭행 등 올해 경찰에 신고된 것만 7차례였다. 안 아무개 씨의 형은 병원과 경찰, 법률구조공단, 동사무소를 찾아 다녔고, 유가족들은 "동사무소와 LH 본사, 관리실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으나 묵살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이번 방화·살인 사건은 국가기관이 방치해서 발생한 인재"라고 했다.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개입에 한계가 있었다. 경찰의 개입이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고, 반대로 민원의 대상이 될 여지가 없는 건 아니겠으나 경찰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 가해자가 정신질환인지 여부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로 누군가 가족의 안전을 위협하고 상습적으로 법과 질서를 어기고 있는데 경찰이 적극 개입을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나서야 한단 말인가.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사소한 폭력과 위험 신호에도 적극 개입해 사전에 그런 사고를 예방하지 않는다면 그건 ‘이게 나라냐’는 원성을 들어도 싸다.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틀린 건 아니나 언제까지 그런 ‘희망고문’만 계속할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진주경찰서장은 분향소를 찾아가 "그동안의 경찰 조치에 대해 철저히 진상 조사 뒤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지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서장 입장에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음은 누가 모를까. 항상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이 경찰인데. 매뉴얼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도 꼬리표처럼 붙는다는 걸. 경찰의 예방 권한 자체가 제한적이란 걸. 수사 이후 단계는 검찰과 재판부를 거치는 촘촘한 과정을 정하고 있으나 예방에 관해서는 경찰에 의무로만 명시되어 있을 뿐 구체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 ‘우범자 관리는 경찰청 내부 규칙에 근거’하고 있을 뿐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경찰만 두들겨 패고 동사무소 직원 몇 명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국가가 책임을 다했다는 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지금껏 계속돼 온 일이다. 결국 이번에도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조현병도 그렇다. 초기에 치료하면 대부분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지만 치료가 늦어지면 회복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한다. 진주 방화·살인 사건의 범인은 20대부터 피해망상이 있었지만 30대가 돼서야 폭행 사건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인 역시 21세 때부터 증상이 있었으나 첫 치료는 5년이 넘어서야 시작됐다고 한다. 이처럼 대부분 청년기에 발병하는 조현병 치료도 골든타임을 놓치고 난 이후에 병세가 악화되고 관리 운운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국가는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다.

 범죄 예방과 안전 보장에 대해 국가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경찰이 치안정보보다 범죄정보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는지, 형사사법기관들은 관리체계에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지,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방어 이전에 치료와 보호를 위해 어떤 방책을 갖고 있는지. 이 질문에 국가는 마땅히 대답해야 한다. 그 ‘누군가’는 반드시 대답해야 만이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국민이 국가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충분히 예방 가능한 참사조차 막지 못하면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국가의 책임 있는 투자로 이런 비극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론으로 국민의 불안은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과 6대 광역시 법원 1심을 기준으로 형사재판 건수가 51만5천여 건, 이 중 심신장애 인정은 76건에 불과하다. 정신질환 운운하면서 사건의 본질을 비켜가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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