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jpg
▲ 김락기 시조시인
텃밭에서 문득 일손을 멈출 때가 있다. 도회지 산자락 어디선가 적막을 깨며 들려오는 새소리에 젖을 때가 그렇다.

 낮에는 뻐꾸기 울음소리로 그리움에 잠기고, 밤에는 소쩍새 울음소리로 애달픔에 빠진다.

 ‘뻐꾹 뻐꾹’ 두 소리마디로 울어대는 뻐꾸기 울음 속에는 향수가 풍겨난다. 주마등처럼 고향산천이 묻어나고 어릴 적 함께 살던 이들의 모습들이 다가온다. 아련하다.

 ‘소쩍(다) 소쩍(다)’ 두세 소리마디로 울어대는 소쩍새 울음 속에는 핏빛 정한이 들어 있다.

 연이어 듣다 보면 무슨 한 맺힌 응어리가 풀어지는 것 같다. 서러움을 삭여주는 카타르시스랄까. 애이불비다.

 씨 뿌린 텃밭에서 막 자라나는 적상추, 아욱, 청경채, 시금치, 열무 따위 애순들을 솎다가 그만 어스름녘이 됐다.

 소쩍새 울음소리에 잠시 멈추었던 일손을 다시 추스른다.

 어언 밤이다. 가로등 불빛 따라 울음소리가 흐른다. 보리밥과 애순푸성귀에 참기름 넣고 양념장으로 쓱쓱 비벼 먹으려던 저녁 식도락도 한순간 잊게 한다.

 오월을 노래하는 것은 이 새들만이 아니다.

 꾀꼬리, 파랑새 같은 새들도 있다. 오월은 온통 새들의 숲속 합창대회로 북적인다. "현이 떨고 건반이 튄다/솔로, 듀엣 또는 트리오 넘어 합창으로/애순들로 에둘러 싸인 연초록 음보에는/빠르게 또는 느리게 날아다니는 음표들/마을이 아직 잠에서 덜 깬 어둑새벽/칠음계 밖에서 울리는 오색찬란한 소리/보이지 않는 손의 달관한 지휘에/안개 떼는 이리저리 몸을 누이고/개골 꽃들은 열락에 겹다 못해/진홍빛 춤사위를 토해낸다/밤이슬 내음이 녹녹하게 배어 든 무대는/온통 꾀꼬리를 비롯한 멧새들이 벌이는/한판의 신명난 숲속 소리축제." 졸저 「황홀한 적막」에 있는 자유시 ‘숲속 절로 음악회’ 전문(일부 수정)이다.

 오월은 흔히 계절의 여왕이라고 한다. 신록 때문이다. 어디 연초록 잎새뿐이랴. 이즈음 한반도에 피어나는 오월의 꽃들이 이에 한몫한다. 늦봄과 초여름을 이어주는 꽃들―철쭉, 영산홍, 튤립, 유채, 아카시아, 골담초 등등이 오월의 축제를 꾸미고 있다.

 지자체마다 꽃박람회다 꽃잔디다 하여 오월을 노래한다. 지난달 말 베트남 하롱베이 등지를 다녀온 바 있다.

 그곳은 꽃이 많다고 한 조카의 말이 생각나서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우리에 비할 바가 못됐다.

 우리네 갖가지 화초가 형형색색으로 흐드러진 이 땅은 가히 천상의 꽃밭이라 할 만하다.

 "몰랐구나, 천상의 꽃밭은 하늘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물 하나 잘 주어도 철철이 꽃을 피워주다니/잠깐 스치며 보는 꽃은 새롭다고 와와 하면서도/늘 가까이에서 피고 지는 꽃들은 잊고 지냈네."

 졸시 ‘천상의 꽃밭’ 첫 부분이다.

 게다가 하루가 다르게 짙어가는 연둣빛 신록은 황홀 그 자체다. "연초록 군락이 눈부시다/콱콱 숨이 막힐 지경이다/아아, 이 황홀!//그 그리던 별세상이 시방 바로 여기로고." 우리는 지금 별세상에 살고 있다.

 졸시 ‘하오의 이 황홀한 신록’의 끝부분이다. 이 땅의 오월이 주는 축복이다.

 오월은 또한 만남과 여행의 계절이다. 나가 생활하는 우리 아이들도 어버이날에 앞서 간만에 집을 다녀갔다.

 부처님오신날을 비롯해 어린이·성년·부부의날들이 서로 간의 만남을 새삼 알린다. SNS 시대에 몸소 만나 함께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다.

 이달 초 연휴 기간 인천공항은 역대 최다 여행객이 오간다고 했다. 틈을 내어 세계 최상급 우리 공항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소쩍새는 밤에만 우는 야행성 조류다. 주행성인 두견새는 그 울음소리가 슬프지 않다. 둘은 다른데도 예로부터 시인들이 혼동해 써왔다. 접동새, 자규, 귀촉도 등 무려 이름이 스무 가지쯤 된다. 이조년의 시조 다정가나 김소월, 한용운, 조지훈 같은 수많은 시인들이 소쩍새 울음소리로 속 깊은 정한이나 설움을 살려냈다. 그 울음에는 애통한 설화나 사연이 들어있다. 실제 오월은 자살자가 가장 많은 달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일조량 증가로 감정기복의 변화가 커서 충동적 행위가 발생하기 쉽다고 한다.

 요즘 청와대 국민청원은 국민 편 가르기 도구로 전락한 것 같아 안타깝다. 국회 여야는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로 대립하고 있다. 아직도 진행되는 적폐청산이 나중에 또 다른 적폐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소쩍새 울 때를 되레 슬픔을 삭이는 계기로 삼아 나달이 꽃과 신록으로 무르녹는 오월만 같아라. 시조 한 수 올린다.

 # 접동새
 
 앵혈이 맺히도록
 서러이도 울어온 길
 
 해마다 이맘때쯤
 다시 찾은 산자락에
 
 오늘도
 무정세월이
 속가슴을 때린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