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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균 인천문인협회 이사
촉촉하게 오전 내내 가슴을 적시는 비, 공장 마당에 건물 뒤 높은 물탱크 구조물에서 쏟아진 까치둥지 잔해들이 물길을 가로막아 마당 곳곳에 저벅저벅 물이 괴다가 이윽고 물살을 못 이겨 낮은 곳으로 물길을 내며 흐른다. 그 엉킨 모습, 어디선가 본 듯 기억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새벽 출근길에 수굿이 우산을 쓰고 걷다가 마주 오는 우산과 맞닥뜨렸다. 본능적으로 나는 오른쪽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저쪽에서도 내가 비켜선 방향으로 따라 비켜선다. 서너 차례 서로 비켜섬을 지속하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제 길을 찾아갔다. 걸어가면서 옷에 빗물 젖음과 비닐우산이 찢어진 데는 없나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우산은 살만 약간 휘었을 뿐 찢어지지는 않았다. 그건 바로 공장 마당에 물길을 막고 있던 검불들이 물길을 내는 순간 같았다.

 잠시 후 전철역에 도착해 전철을 타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막 모퉁이를 도는데 이번에는 한 육십 세쯤 됨직한 아주머니가 맞닥뜨리며 구두코를 밟는다. 비에 젖어 축축한 탓인가 기분이 축축한 참에 구두까지 밟히고 나니 은근히 짜증이 난다. 아침부터 불쾌한 표정을 던질 수도 없고 나는 미안해하는 아주머니를 뒤로하며 개찰구를 향해 갔다. 이른 아침 출근길은 누구나 다 바빠서일 게다. 앞에 나가려던 사람이 개찰구의 통제에 걸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카드를 찍는다. "저기 한 발짝 물러서서 찍어 보세요." 그때야 개찰구가 힘겹다는 듯 통제를 풀어준다. 전철 타는 곳에 도착하니 타는 문 쪽에 사람들이 몰려서 있다. 가만히 다가가 뒤에 섰는데 앞에 선 사람이 바짝 다가서지를 않아 뒤로 지나가는 사람이 내 등을 슬쩍 밀친다. 내릴 사람들이 내릴 수 있도록 가운데는 비워두고 양쪽 문가로 탈 사람들이 서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이윽고 전철이 들어왔다. 안전문과 전차의 문이 동시에 열리자 사람들이 내리기도 전에 가운데 서 있던 사람이 먼저 타려고 내리는 사람을 막아서는 통에 잠시 혼잡스러워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먼저 쑤시고 들어간 사람은 아무 곳이나 빈자리에 날렵하게 엉덩이를 던졌다. 여자들도 비워두고 잘 앉지 않는 임산부석에 한 건장한 20대 청년이 분홍빛 의자를 뭉개듯 앉았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리고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이는 앞에 노인이 서 있어도 못 본 척 고개를 숙인 채 휴대전화만 들여다봤다. 설마 글을 못 읽는 건 아닐 텐데, 그러기에 휴대전화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겠지.

 가까스로 마음이 진정되려는 순간 이번에는 휴대전화 벨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빨리 소리가 꺼졌으면 싶던 벨이 끊겼나 했더니 커다란 소리로 전화를 받으며 깔깔거린다. 더군다나 다리를 옆으로 꼬고 앉아 있어 불쾌해하며 옆 사람이 일어서서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다행히도 내가 내릴 곳은 서너 정류장밖에 되지 않아 금방 그 무질서의 현장을 벗어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온종일 곳곳에서 부딪치는 그런 무질서 버스를 환승하러 가면서 생각해 본다. 그 거리 역시 황사와 미세먼지로 혼탁한데다가 담배꽁초까지 여기저기 버려져 있어서 무질서하기는 매일반이었고 오가는 사람들을 피해 가야 하는 불편함 또한 여전했다. 어떻게 하면 쾌적한 거리가 될 수 있을까? 내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 늘 시행하는 도시환경정화사업도 도시 곳곳 오염원을 정화하기에 앞서 보행 시 보행자 우측보행 등 생활의 기초질서부터 지키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와 같은 기초질서 강령은 이미 도심 곳곳의 벽보에 붙어 있어 흔하게 눈에 띄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누구 한 사람 홍보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으므로 그런 것들은 모두 유명무실한 벽보 장식일 뿐인지 벌써 오래다. 우리들은 흔히 이러한 문제들을 관공서나 자원봉사자들이 해야 하는 일로 치부하고 아예 관심조차 없다. 하여 나는 이제부터라도 문제 해결의 한 방안으로 ‘우측보행을 생활화 합시다’라는 책 사이 휴지와 담배꽁초를 담을 수 있는 휴대용 재떨이 깡통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 줬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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