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가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이동휘(1873∼1935)선생을 올해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30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1873년 6월 20일 함경남도 단천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이동휘 선생은 러시아를 무대로 항일투쟁에 나섰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다.

그는 인천과 인연이 깊다. 1902년부터 강화진위대장으로 활동한 후 1905년 강화에 보창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운동에 헌신했다. 1907년 군대 해산 무렵 연기우, 김동수 등과 강화도에서 의병항쟁을 했다. 서북학회와 비밀결사 신민회의 지도자로서 구국운동을 전개했고, 1911년 3월 안명근·양기탁 사건에 연루되며 일제총감부에 체포돼 무의도에서 1년간 유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북간도 한인자치기관인 간민회를 지도하고, 북간도 각지를 순회하며 신교육 보급과 기독교 전도활동을 통해 동포사회의 단결과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러일전쟁 10주년이 되는 1914년에는 제2러일전쟁 발발에 대비해 항일광복전쟁계획을 수립했다. 만주와 러시아의 민족운동세력을 규합한 대한광복군정부를 조직했고, 북간도 왕청현 나자구에 사관학교를 설립했다. 1918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동지들과 최초의 한인사회주의정당인 한인사회당을 창당했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총리직에 취임했다.

이동휘 선생은 혁명적 방법에 의해 조국 광복을 달성할 수 있다는 신념을 지녔던 진보적 민족혁명가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처는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1992년부터 선정됐던 이달의 독립운동가 314명 가운데 3·1운동과 임시정부 활동에 공로가 큰 인물을 재선정했다. 국가보훈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인물의 희생과 공훈을 널리 알리고자 매월 포스터를 제작해 전국 학교와 도서관, 지하철 역사 등에 배포하고 있다.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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