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비밀 핵계획을 시인했다는 미국 정부의 발표 이후 온갖 험악한 시나리오가 난무하는 가운데 백악관과 미 국무부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삼 강조함으로써 분별없는 위기감의 확산을 막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줄 될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파월 국무장관이 "현재로서는 군사행동에 나설 계획을 갖고 있지않다"고 분명히 못박은 것은 그 누구보다도 비참한 전쟁의 악몽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일단 상당한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배신에 분개한 나머지 북한 경수로 건설과 중유 공급을 중단하는 등, 초강수를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 들려오고있다. 북한의 비밀 핵개발에 대한 응징으로 이처럼 치명적인 보복이 가해질 경우 제네바기본합의는 완전히 깨어지는 셈이 되는 만큼 이같은 불행한 사태가 오지않도록 모두 당사자의 노력이 필요한것으로 보인다.

과연 북한이 어떤 의도로 핵계획을 시인했는지, 아직 북한의 입장 표명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전략을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여러 분석중에는 북한이 체제 존립을 위한 미국의 보장을 얻는 대가로 대량파괴무기 계획을 맞교환하려는, 이른바 빅딜을 희망하고 있으리라는 추측도 있다. 만약 이처럼 북한이 그들의 새로운 생존 전략에 따라 대량파괴무기를 포기할 의사를 가지고있다면 그다음 중요한 것은 이에 대한 미국의 태도다. 미국의 진정한 최대 목표가 북한의 손에서 위험한 무기를 빼앗는 것이라고 한다면 강압적인 방식과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 중 어느 것이 효과적일지 계산해야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경우에도 북한이 먼저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으니 미국도 이를 파기하겠다고 나설 것이 아니라 북한에 대해 합의를 준수하라는 강력한 압력을 가하면서 제네바 체제를 살리도록 노력해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공포로부터의 해방이 최대의 관심사인 우리로서는 핵위기 고조를 막기위해 북한과 미국 사이를 중재하는 노력을 강화해야한다. 마침 19일 시작되는 남북장관급회담은 이를 위한 중요한 기회가 된다. 북한이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동시적인 맞교환을 요구한다고 해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을 것인지, 먼저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한 다음 미국에 보상을 요구하는 방식이 오히려 효과적인 것이 아닌지, 북한이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자료들을 충분히 제시해 주어야한다. 무엇보다 당장 핵을 포기한다고 선언하지 않을 경우 그들이 추진 중인 개혁개방 노력과 관련, 겨우 확보된 국제적인 지지를 완전히 상실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경고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을 상대로도 힘든 설득 노력을 기울여야하는 것이 우리의 사정이다. 켈리 차관보의 방한, 오는 26일로 예정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우선 이같은 노력의 기회가 된다. 우리의 영향력의 한계 때문에 주저앉을 필요는 없다. 북한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관한 국제적 합의는 부시의 강경노선을 완화하는데 어느정도 효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북-미간 적대관계 해결이 한반도 평화의 최대 변수인 만큼 우리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다. 북한과 미국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중재하고 촉구하는 노력은 끊임 없이 계속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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