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에 대해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불장난을 4일부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정부는 강력한 외교 대응, 수입선 다변화, 국산화 등 들불이 번진 후의 대책들만 나열하고 있다.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본의 도발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듯하다. 다음 달 중에는 한국을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치까지 실시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러면 거의 전 품목에서 개별 수출 허가를 받는 상황이 돼 수출 규제의 영향을 받는 국내 기업이 전방위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G20 정상회의에서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무역·투자 환경’을 그토록 강조했던 아베 총리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이렇게 정반대의 악수를 둘 줄은 몰랐다. 이번 조치는 자유무역 정신에 반할 뿐 아니라 결국은 일본 경제로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 측의 허물도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나, 1965년의 ‘한일 청구권 협정’을 계기로 우리 경제가 이 정도까지 발전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따라서 일본과 미래 관계를 중요시 했다면, 경제 발전의 수혜를 입은 정부와 기업들도 주도적으로 나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피해를 회복하고 치유할 수 있도록’ 노력했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사법부 판결과 일본 반응이나 지켜보는 식으로 수수방관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오히려 전 정권에서 체결된 양국 간 협약을 적폐로 몰아가며 단죄하는 데 몰두했다. 사드 배치로 중국의 경제보복이 시작됐을 땐, ‘3불 정책’의 일환이라며 한·미·일 안보 협력의 틀까지 깼다.

 정부의 부작위 또한 문제를 키운 원인이었던 것이다. 물론 서두에도 지적했듯 아베 총리는 너무나 큰 악수를 뒀다. 이렇게 해서 한국 정부에 타격을 입히고,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면 이는 오산이다. 뒤에서 양국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만약 이들까지 상대국 제품의 불매 운동과 관광 억제 같은 경제보복에 참여하는 상황이 되면, 결국 양쪽 다 엄청난 피해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 이익을 누가 볼 것이라 생각하나. 이이제이(以夷制夷)에 놀아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하루속히 두 정상이 소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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