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돼야 할 한일 관계
상태바
‘관리’돼야 할 한일 관계
정승연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19.07.08
  • 11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승연 인하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jpg
▲ 정승연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지난해 가을 이후 역사 문제나 안보이슈 등에 있어서 갈등을 빚어온 한일 양국이 급기야 무역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화해치유재단 해산, 레이더 조사(照射) 논란 등을 빌미로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핵심품목 수출 통제에 나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일 우리나라에 대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핵심소재 3종류의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첨단소재 등의 수입 절차에서 길게는 90일의 일본 정부 허가 심사를 받게 됨에 따라 삼성, LG,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의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 일본이 수출 규제에 나선 품목들이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소재이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으로 우려된다.

 더 나아가 일본 정부는 한국을 이른바 ‘화이트 국가’(백색국가) 대상에서 빼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화학소재, 전자부품, 공작기계 등 일본에서 한국으로 수출하는 물품 중 상당수가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일본으로부터의 자본재(부품, 소재, 기계) 수입을 통해 생산한 완성품의 미국, 중국으로의 수출이라는 기본 통상구조를 유지해온 우리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당연히 우리 정부도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우선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또한 우리의 반도체 수출이 타격을 받을 경우 IT 관련 글로벌 부품 공급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들며 미국, 중국을 움직여 일본에 압박을 가하려는 전략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들이 단기적으로 효과를 발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 나아가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일본에 의존해 왔던 자본재산업의 국산화를 이루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는 당연한 말이고 그간 수없이 나왔던 이야기이지만, 이 역시 목표를 아주 길게 잡지 않는 한 달성이 어려운 일이다.

 왜냐 하면 이번에 문제가 된 핵심소재 등의 분야에서는 오랜 기간에 걸친 숙련과 노하우가 요구됨으로써 단기간에 따라잡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부터 유학생과 교수로서 일본에서 10여 년을 살면서 필자가 느꼈던 점은 한일관계가 양국의 신중함을 바탕으로 잘 ‘관리’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양국 모두 피해를 보게 되는데, 특히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우리가 입는 피해가 더 컸다.

 일본 측이 원인을 제공해서 한일 간에 갈등이 일었던 것에는 일본 정치가들의 망언이나 역사교과서 왜곡 등의 사례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나라는 국민과 정부, 언론 모두 격앙된 반응을 보였으나 그로 인해 일본이 큰 타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반면 우리 측에서 원인을 제공했던 경우에는 양국 갈등이 오랫동안 이어졌으며 그로 인해 우리가 받은 타격이 매우 컸다.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대통령의 소위 ‘버르장머리’ 발언으로 격앙된 일본자본들이 국내에서 갑자기 빠져나간 것이 IMF경제위기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한 2000년대 초부터 일본에서는 한류 붐이 일었는데, 2012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독도 방문과 일왕에 대한 사과 요구가 일본 여론을 한류 붐에서 혐한으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근현대 역사에 있어서 일본은 가해자였고 우리는 피해자였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다.

 이로 인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면 그 해결을 위해 양국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도 당연히 요구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양국이 갈등과 대립을 거듭하며 모두의 피해가 커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여러 갈등을 돌아볼 때, 한일 양국이 가까운 미래에 갑자기 관계가 좋아질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양국이 진정한 친구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아마도 몇 세대가 지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일관계가 더 악화되어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당장 역사문제를 매듭짓겠다는 초조함에서 벗어나, 상대와의 관계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는 않겠다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기호일보, KIHOILBO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