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타자의 고통에 외면하지 못하는 윤리적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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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타자의 고통에 외면하지 못하는 윤리적 존재일까?
박정모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19.07.12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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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모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요즘은 새로운 소식이 반갑지 않다. 새로이 쏟아지는 소식이 홍수처럼 밀려드는 느낌이다. 좋은 소식이 많지 않고 걱정스러운 소식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국가는 자국의 이익이 먼저고 개인은 개인대로 공공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이 먼저 앞선다.

 개인의 이익과 자국의 이익이 먼저 앞서는 사회에서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점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어 들려오는 새로운 뉴스가 점점 부담스럽다.

 교사가, 직장상사가, 교수가 해당 학교 학생에게, 해당 직장 아래 직원에게 직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강제하는 경우, 부당하게 불이익을 받는 경우에 대한 제보가 많고 이에 대한 규제를 마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직위나 관계에서 더 우위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대로 타인을 대하는 경우에는 생각지도 못하는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본다.

 물론 상대적인 위치로 말 못하고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고 현재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이 들고 보호받아야 할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인터넷에 서울 어느 중학교에서 학생이 교사를 장난으로 수업 중에 때린 사건이 기사로 나왔다. 이유는 친구가 교사를 때리면 돈을 준다는 말에 담임 선생님은 못 때리고 힘이 없어 보이는 여선생님을 때렸다고 한다. 주문을 한 학생은 담임 선생님을 때리면 2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아직도 약육강식의 동물적인 세계에 우리 모두 머물러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4차 혁명을 외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동물적인 규칙에 머물러 있어 인간이 동물 이상이 아니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것 같아서 씁쓰름하다.

 주문을 한 학생은 담임 선생님에게 어떤 좋지 않은 감정이 있어서 그런 주문을 다른 학생에게 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정말로 별 것 아닌 것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행동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 슬프게 만든다.

 공동으로 살아야 하는 시간과 공간에는 무언의 공공의 질서가 있다. 타인과 관계하는 공동의 공간과 시간에 어떤 무례한 인간이 끼어들지 모르고 그들에게 무력하게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이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커가게 만든다.

 반면에 초등학교 학생이 승용차에 깔렸는데 주위의 주민들이 모두 합심해 차를 들어 올려 구했다는 뉴스는 아직 우리에게 남을 도우려는 공동체 의식이 남아 있음을 보여줘 세상이 무섭지만은 않음을 알려준다.

 우리 모두에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책임지는 윤리적인 존재라고 정의한 철학자 레비나스가 틀리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사례가 많았으면 한다.

 사회 정의는 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정의가 아니라 타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정의이며 그래야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음을 피력한 레비나스가 간절하게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생활하면서 나도 모르게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고 내가 임의로 판단하고 결론 내리고 하는 많은 상황을 경고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들, 문자들, 언어들이 상대방은 물론 누군가는 불편하고 힘들어 한다.

 어떻게 타인을 상대해야 하는지 아직도 쉽지 않은데 돈 2만 원에 선생님을 때리라고 주문한 학생과 주문대로 하는 학생에게 누가 어떻게 이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사례가 어떻게 해야 덜 발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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