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바꾸는 도시재생사업은 하나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꼼꼼히 계획을 세우더라도 생각지 못한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야 하는 일이 생기죠. 이처럼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면서도 다양한 갈등과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지만 행정과 주민 등 모든 당사자들이 지혜를 모아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5-1.jpg
 청운대학교 건축공학과 장동민 교수는 지난해부터 인천시 서구 상생마을 도시재생사업의 총괄 코디네이터를 담당하고 있다. 하나의 사업을 두고도 행정과 지역주민, 전문가 등의 입장이 다른 만큼 이를 중간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최대한 모두의 욕구를 만족시키면서도 사업이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조정자인 셈이다.

 이러한 역할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가 바로 상생마을 완충녹지 커뮤니티센터 설계 문제다. 장 교수가 처음 상생마을을 맡았을 당시 해당 시설 공모는 일반 공모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장 교수는 일반 공모만으로는 지역의 특수한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설계를 찾아내기 힘들다고 봤다.

 SK인천석유화학과 상생마을 주거지 간 거리는 82m로, 이 중 50여m에 완충녹지가 조성돼 있다. 완충녹지는 산업단지와 주거단지 각각의 기능을 보호하면서도 주거환경을 해치지 않도록 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완충녹지에는 나무를 충분히 심어야 하는데, 여기에 커뮤니티센터까지 짓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나의 공간에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기능이 중복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장 교수는 조금 더 우수한 설계안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 공모보다는 지명 공모를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지명 공모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특정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계 공모를 실시하는 방식이다. 과거 인천시가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을 건설할 때 지명 공모를 실시하긴 했지만 인천지역 내 도시재생사업에 이를 적용한 적은 없었다.

 장 교수는 "당시 우리 지역에 지명 공모가 왜 필요한지 등의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 건축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받았고, 이후 지명공모선정위원회 등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최종 4명의 전문가를 추천받았다"며 "지명 공모는 검증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데다 사업비 중 일정 범위 내에서 모든 공모자들에게 상금을 줄 수 있는 만큼 더 우수한 설계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회상했다.

 구와 현장지원센터 등은 공모에 앞서 상생마을 주민들과 워크숍을 가졌다.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워크숍에는 총 250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하는 등 관심이 높았다. 주민들은 커뮤니티센터에 어떤 시설이 들어서고, 어떻게 운영됐으면 좋겠는지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다. 워크숍에서 나온 내용들은 하나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성돼 공모자들에게 전달됐고, 전문가들은 이 가이드라인에 각자의 아이디어를 접목시켜 설계안을 내놨다. 그 결과, 완충녹지에 나무를 충분히 심는 동시에 커뮤니티시설은 지하화하는 합리적인 안이 나올 수 있었다. 주거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주민을 위한 마을사랑방 역할에 충실한 시설이 생기게 된 것이다.

 장 교수는 커뮤니티센터의 수익성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당장 예산을 들여 시설을 짓는 단계에서 나아가 이후 시설이 유지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미 워크숍에서 주민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낸 상황이라 이를 토대로 시설이 자체적인 경제성을 지닐 방안을 모색 중이다. 당장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돌파구가 생기고 지역경제 가치도 재생산된다면 궁극적으로는 사업이 끝나도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 집을 수리하고 재건축하는 욕구가 생겨날 것이라는 설명이다.

 장 교수는 "노후화되긴 했어도 원도심에는 분명히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데, 이런 잠재력을 극대화해 도시 발전의 전환점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도시재생사업"이라며 "물리적으로 집들이 바뀌고 새로운 시설이 생기더라도 결과적으로 주민분들이 도시재생사업에 만족하려면 사업 결과 경제적으로 활력이 생기는 등 실질적으로 지역이 살아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5.jpg
 이런 관점에서 장 교수는 가로주택 정비사업이 도시재생사업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역에 부족한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자기 집과 자기 동네가 가시적으로 변해야 주민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생각이다.

 지난 20~30년간 우리나라에서는 나대지에 건물을 높게 짓는 등의 도시개발이 진행돼 왔다. 새로운 건물을 밀도 있게 지어놔도 그만큼 수요가 충분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구 감소 및 고령화와 같은 문제로 역세권 등 특수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개발수요가 사실상 적다. 그러다 보니 원도심지역의 도시재생을 통해 사회·경제적으로 개선 가능성을 찾는 상황이다.

 그는 "지금은 대규모 정비사업이 줄고 기존에 설정됐던 재개발·재건축 지역도 해제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하는 경우 옆집과 협의해 하나의 건축을 하거나 일정 지역 주민들이 작은 단지를 구성해 꾸미는 등 다양한 소규모·소단위 개발 사례가 늘어난다면 대규모 계획이 없어도 점진적으로 지역을 바꿀 확산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장 교수는 상생마을 도시재생사업이 일방적인 개발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을 바꿀 역량을 갖게 되는 마중물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장동민 교수는 "이 사업은 2021년 종료되지만 계획된 사업이 끝난 이후에도 주민들이 소규모 정비사업 등 자체적으로 마을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며 "마을 외관의 변화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주민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되는 방안을 중점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희연 기자 khy@kihoilbo.co.kr

 사진=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