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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재학 제물포고 교감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이는 널리 알려진 인권 메시지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도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사람은 귀한 존재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일찍이 칸트도 말했다. "인간은 수단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항상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

 인간은 물질문명의 어떤 도구보다도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항상 인간답게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타인을 대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은 스스로 가치를 높이고 품격 있는 행동으로 살아야 한다. 여기엔 인간 개개인의 차원과 함께 공동체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대를 잇고 역사를 잇는 교육은 인간에 대한 존엄사상을 중심으로 공동체성 함양에 강조점을 둬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인성교육은 인간의 성품을 계발하는 교육을 통칭한다. 단지 예절교육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현실적으론 공동체 구성원으로 제대로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교육이다. 영국의 젠틀맨 교육을 보라. 젠틀맨 교육의 목적은 자신들의 전통과 예절을 중시하며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인간 존엄에 대한 가치를 재발견하고 영국 역사에 자부심을 높여 줬다. 과거의 보도 내용을 보자. "연기만 잘하면 된다는 이유로 각종 스캔들에 휩싸이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영국 배우들은 높은 학식과 매너, 약자에 대한 배려를 선보인다.

 또한 영국 웨일즈 출신의 사진 기자 필립 존스 그리피스의 경우, 유명한 사진기자로서 미래를 보장받았는데도 이에 만족하는 대신 베트남 전쟁 종군기자에 지원했다.

 이러한 선택은 고통을 받는 베트남인들의 상황을 찍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도록 평화적인 방법을 강구하겠다는 그의 사명감 덕분이었다."

 우리의 인성교육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그것은 시민교육의 성격보다는 예의범절과 같은 단순한 개인 차원의 예절교육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공동체가 어떤 모습을 띠게 될지에 대한 성찰을 더욱 필요하게 만든다. 공동체란 최소한의 예절 관계로 유지되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연대성과 같은 공동체성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교육도 인성교육은 공동체성 함양에 강조점을 둬야 한다.

 각종 청문회 등을 통해본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오직 개인의 역사만 있을 뿐이다. 거기엔 공동체 생활에 부적합한 인물이 많다. 그들은 한때 우리의 지식교육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인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 온 길은 세상의 온갖 이익을 좇아 평범한 필부필녀만도 못한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도 한 치의 부끄럼 없이 고위 공직에 올라 자신과 가문의 명예를 얻고자 끝없는 욕망을 드러낸다. 과연 그들이 영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알기나 할까? 최근에도 영국 왕자가 자원입대해 위험한 전쟁터에 참전한 것도 유별나지만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들의 문화가 부러울 뿐이다.

 병역의 의무조차 피하고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한 우리의 지도층과는 비교가 안 된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다를까?

 국민의 면면에 흐르는 의식이 귀족이고 상류층일수록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봉사하려는 공동체의식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의 임진년 전쟁에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국가를 지키고자 했던 소수 양반처럼 말이다. 이것이 영국에서는 상류층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스튜던트 오블리주(student oblige)’ 의식의 함양을 통해 ‘젠틀맨 한국인(K-gentleman)’으로 육성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인성교육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시대적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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