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테오라에서 만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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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오라에서 만난 여자
신효성 국제PEN한국본부 인천지역부회장
  • 기호일보
  • 승인 2019.07.31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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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국제PEN한국본부 인천지역부회장
호기심이 먼저인 눈빛들이 수도원을 헤집고 다녔다. 세월에 깊어져 거무스름해진 돌벽과 바랜 기왓장은 와글거리는 순례객이 못마땅했을 것 같다. 참배의 마음이라 하기엔 관람객이 너무 많았다.

6천만 년도 더 전에 바다 밑바닥이 솟구쳤다. 솟구친 땅은 비바람과 햇빛과 냉기와 폭염에 깎이고 닳아지면서 장엄한 바위 봉우리를 만들었다. 풍경은 신의 영역이 됐다. 수사들이 찾아들어 수도원을 지었다. 사다리와 그물망이 세상과의 통로였다. 발아래 땅에서는 줄 하나에 구원을 매달았을 것이다.

기도와 금식과 순종과 청빈은 익숙한 세상이 아니다. 성소와 기도실의 거룩함에 숨소리가 고요해졌다. 해가 나는 시간에도 그믐의 밤에도 그림자에서 벗어날 시간은 찾아오고 그림자와 빛은 대각의 위치에서 풍경을 그려 나갔을 것이다. 수백 미터 아찔한 바위 꼭대기는 평평했다. 솟은 바위기둥 꼭대기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봤다. 청록의 바람에 꽃향기가 따라왔다. 눈에 담기는 하늘에 구름이 호젓했다. 평화로웠다.

메테오라로 출발하면서 여자와 합류했다. 메테오라에는 순간 돌풍이 불었다. 가이드가 추락을 조심하라고 했다. 여자는 바위절벽 가장자리를 태연히 걸었고 아찔한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여자는 끊임없이 셀카 사진을 찍었고 그것도 부족한지 사람들에게 부탁해 독사진을 찍어댔다. 주저 없이 들이미는 여자의 사진 찍기 부탁이 민폐처럼 보여 차라리 내가 찍어주고 말자는 공명심이 생겼다. 여자는 답례라 생각했는지 사진을 찍어주면 꼭 내 사진도 찍었다. 자세와 얼굴 각도를 감독했다. 여자의 조언대로 고분고분 따랐다. 까탈스럽게 토를 달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이라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이 투어 일행을 위해서 나을 것 같았다.

수도원은 사진 촬영을 금지한 곳이 많았다. 수사나 수녀를 사진에 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여자가 예배실 입구에서 종을 치고 있는 수사를 찍다가 휴대전화 사진을 삭제당했다. 휴대전화를 돌려받은 여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수사 옆에서 셀카 사진을 찍었다.

여자의 옷차림을 보면 서른 중반은 됐을까 싶다가 햇살에 드러난 얼굴에 세월이 보였다. 여자는 여러 얼굴을 갖고 있었다. 천진한 아이가 보이고 사춘기 반항이 보이고 연륜의 어른도 보였다. 그럼에도 여자의 나이테는 단정한 정돈이 아니었다.

수도원을 참배하려면 옷을 갖춰 입어야 했다. 여자는 수도원 입구에 비치된 긴 치마를 찢어진 청바지 위에 두르고 드러난 어깨를 스카프로 감쌌다. 수도사처럼, 신심 깊은 부인처럼, 호기심 가득한 소년처럼, 변화무쌍한 표정과 몸동작으로 수도원 복장 규정을 놀이로 만들었다.

투어 일행 중 일부가 여자의 행동에 언짢아하는 내색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여자를 변명해주고 있는 내가 보였다.

여자를 보고 있으면 변온동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의 체온은 수시로 변했고 위장막으로 가리지 않았다. 감정선이 솔직한 여자는 타인의 시선에 움찔해 가면을 쓰지 않았다.

여자의 분별이 부산스러워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점은 있어도 일행의 아이를 챙기고 연세 드신 순례객에게 살뜰한 여자를 봤다. 떠돌이 고양이를 대하는 손길도 다정했다.

오롯이 참됨 하나로 사는 존재임을 보여주려고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산다. 내 속에 들어있는 무수히 많은 실체를 위장막으로 가리고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실체만 내보인다. 공들인 자화상에 신중하게 색깔을 입히는 사람들 틈에서 보색의 색을 거침없이 입히는 여자가 특별했다.

저녁을 사겠다는 여자와 차를 마셨다. 차 한 잔에 녹이기에는 여자의 상처가 많았다. 마음은 크기가 우주만한 지 온갖 기억을 빨아들여 저장한다. 저장된 파편들은 숨죽이고 있다가 상처를 건드리면 불시에 존재를 드러낸다. 나도 여자도 상처를 치료하는 의술은 없다. 덧나지 않게 해줄 수만 있다면 메테오라는 위로가 됐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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