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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범 아나운서
최근에 어느 행사 사회(MC)를 보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외국인들이 많이 참석한 국제행사였습니다. 그래서 사회도 우리말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함께 해야만 했었습니다. 제가 우리말로 진행을 하면 통역사가 영어로 동시통역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동안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UNESCO 세계 책의 수도 개막식과 폐막식,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콘서트, 국제 아동교육 포럼, 대한민국 수출박람회, OCA 아시아올림픽평의회 공식행사 등 여러 국제행사에서 사회를 많이 맡았었던 터라 별 어려움 없이 무사히 행사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모든 순서가 끝나자마자, 참석했던 한 외국인이 제게로 다가와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원기범 아나운서라고 하셨죠? 반갑습니다. 정말 궁금한 것이 있어서 그러는데, 한국 사람들은 왜 사진을 찍을 때 ‘돈을 달라’는 제스처를 취하나요?" 어리둥절해 있는 제게 행사 주최 측 관계자가 설명을 해줍니다. 그 분은 미국에서 오셨는데 한국 문화에 관심과 애정이 많으시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행사 말미에 기념사진을 찍을 때 왜 참석자들이 다들 ‘돈’을 뜻하는 제스처를 취했는지 궁금해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제야 저는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여러분도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엄지와 검지 끝부분을 교차시켜서 ‘하트(heart)’ 표시를 한 것입니다. 양 팔을 머리 위에서 둥글게 만들었다가 두 손끝을 포개서 정수리 쪽에 대며 만드는 하트 표시와 비교해 소위 ‘소심한 하트’라고 말하는 바로 그 제스처입니다. 그것을 ‘돈’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했던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서는 바로 그 제스처가 지폐를 셀 때 모습처럼 보여서 ‘돈’ 혹은 ‘돈을 달라’는 등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국인에게는 양팔을 이용하는 ‘큰 하트’와 양 손의 모든 손가락을 맞대고 하트 모양을 만들어 가슴 쪽에 대는 ‘양손 하트’, 그리고 ‘소심한 하트’까지 모두 보여주며 참 의미를 설명해 줬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박장대소를 하며 한국 문화를 또 하나 배웠다고 즐거워했습니다. 제스처(gesture)란 말의 효과를 더하기 위해서 하는 몸짓이나 손짓을 말합니다. 소통에 양념 역할을 합니다. 말보다 더 큰 효과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슬픔과 좌절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많은 말로 위로하기보다 가만히 손을 잡아주고 조용히 안아주는 것이 더 큰 위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일입니다. 제가 무척 좋아했던 로저 와그너 합창단 (Roger Wagner Chorale)이 내한 공연을 했었습니다. 합창 애호가인 저는 당연히 그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벅찬 감동의 무대였습니다. 당시 워낙 오랜만에 하는 내한 공연인데다가 한국에도 매우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던 터라 정규 공연이 모두 끝났는데도 박수 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한 곡, 또 한 곡, 이렇게 앙코르송이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 속에 이어지고 또 이어졌습니다. 2시간의 정규 공연이 끝난 뒤에 무려 1시간 가까이 앙코르 무대가 펼쳐졌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훌륭한 무대매너입니다. 저녁 8시에 시작된 공연은 11시가 다 되도록 끝날 줄을 몰랐고 관객들은 흥에 겨워 밤을 새울 듯한 기세였습니다.

바로 그 즈음, 계속 앙코르 송을 지휘하던 로저 와그너가 몸을 돌려 관객들을 향해 섭니다. 두 손을 마주잡고 고개를 공손히 숙입니다. 고맙다는 뜻입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자기 손목에 찬 시계를 매우 과장된 몸짓으로 쳐다보고는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갔으니 이제는 공연을 마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던 그가 몸동작 몇 개로 완벽하게 관객들과 소통을 하던 모습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합니다. 이렇게 제스처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데 효과적인 소통(communication)의 도구가 됩니다. 아침의 ‘엄지 척’ 하나가 혹은 ‘소심한 하트’ 하나가 하루 종일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해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평소에 어떤 제스처를 즐겨 사용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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