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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계봉 시인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열풍이 예사롭지 않다. 젊은이들이 BTS와 같은 아이돌에 열광하듯이 중장년층에게는 송가인이 그야말로 아이돌인 셈이다. 그녀만 나오면 프로그램의 종류와 상관없이 시청률도 고공행진을 한다. 사랑스러운 외모에 탁월한 가창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8년간의 무명생활, 판소리를 전공한 재원, 구성진 소리 실력, 무녀(巫女) 어머니를 둔 특별한 가족사 등등 확실히 그녀에게는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다양한 매력과 가슴 찡한 서사들이 존재한다. 특히 그녀의 목소리는 남도의 한을 표현하기에 최적화돼 있는 듯 보인다. 대한민국 트로트 역사는 송가인의 출현 전과 후로 나뉘어 기술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요 평론가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송가인 특수(特需)’는 단지 그녀가 가진 개인적 매력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텔레비전을 켜면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난무하고 가요 프로그램은 온통 앳된 가수들의 요란한 몸짓과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랫말만 보여주고 있는데, 현재의 이러한 한국사회 발전과 다양한(요란한) 문화를 가능하게 한,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한 앞선 세대들은 정작 대중문화로부터 소외돼 온 것이 사실이다. 광고수입 등 자본의 논리에 철저한 방송 시스템이 프로그램의 주요 소비층으로 젊은 세대를 겨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중장년층의 문화적 갈증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송가인의 출현은 바로 이러한 비대칭적 문화 소비 상황에서 중장년층에게 문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중장년층도 이제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팬클럽을 만들고 공연 티켓을 자발적으로 구매해 공연장을 찾는 적극적인 소비 주체로 나서게 된 것이다. 송가인은 이제 젊은 세대가 그들의 ‘우상’에 광적으로 열광하듯 중장년층에게도 욕망 분출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따라서 송가인은 그들에게 범상한 가수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외면당해 온 자신들의 문화를 다시 시장의 중심으로 견인해 줄 희망의 아이콘이자 보호하고 아껴줘야 할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즉 중장년층은 송가인이란 아이콘을 통해서 잃어버린 젊은 시절의 추억을 환기하는 동시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소비할 수 있다는 것에 묘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아이돌을 위해 피켓을 만들고 음반을 구매하며 공연 현장을 찾아가 박수부대가 돼 스스로의 팬덤을 강고하게 형성해 가듯 중장년층 역시 그렇게 함으로써 문화 소비의 주체로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동년배 가수가 아닌, 막내딸 같은 귀여운 이미지의 송가인을 응원하는 것은 자식을 향한 부모들의 애틋한 마음에 다름 아니라는, 심리적 자기 합리화까지 하게 된다.

 어느 날 우연히 매력적인 대상에 끌려 그에게 열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관심과 애정인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나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내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을 경우 한 순간 안티(anti)로 돌아설 수 있는 것이 젊은 팬들과 아이돌의 관계라고 한다면, 송가인과 중장년 팬들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혹은 삼촌과 조카)의 관계로 치환된 관계이기 때문에 쉽사리 소원해질 수 있는 관계가 아닌 것이다. 자식이 다소 부족하다고 해서 관계를 끊어버릴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즉 젊은 세대에게 아이돌이란 소비되는 대상이고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대상일 뿐이지만 중장년층에게 송가인은 소비되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아끼고 보살펴 주는 자식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팬들은 그녀 자신뿐만 아니라 그녀의 부모와 가정환경, 그녀의 친척, 학교 동창들 심지어는 그녀의 애완견에게까지 관심과 애정을 쏟게 되는 것이다. 결국 송가인에 대한 중장년층의 지극한 팬심(fan과 心이 합쳐진 신조어)은 그녀와 관련된 모든 것에 관심을 보임으로써 예사롭지 않은 자신들의 사랑을 스스로 확인,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송가인 열풍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녀가 고수하는 정통 트로트 장르의 애절한 가락과 노랫말에 투영된 허다한 이 땅의 장삼이사들의 애환이 결코 가공된 것이 아닌, 실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고, 그녀는 화려한 대중문화의 시혜를 결코 받아본 적 없는 중장년층의 오랜 문화적 소외감을 해소시켜준 계기가 됐기 때문에 그렇다. 따라서 ‘송가인 현상’은 앞으로도 깊고 다양한 층위로 중장년층의 일상을 파고들어 그들이 자신들만의 새로운 팬 문화를 만들어 가게 하는 믿음직한 동력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당장 컴퓨터를 켜거나 휴대폰을 열어 송가인을 검색해 보라. 그리고 그녀가 부르는 애절한 노래들을 들어보거나 구성진 진도아리랑을 들어보라. 당신이 만약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라면 분명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끼게 될 것이다. 송가인, 그녀는 탁월한 가수이자 새로운 문화현상의 주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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