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반문명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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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반문명 이데올로기
김호림 칼럼니스트/ 전 인천대학교 겸임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19.08.16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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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림 칼럼니스트
시공을 초월해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고 지배하는 영원불변한 관념체계가 이 땅에 있을까? 그러한 체계는 세계를 설명하고 변화시키는 사상과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러한 신념 혹은 인식 체계를 이데올로기라 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인류문명과 역사의 진보·발전에 따라, 혹은 시대의 풍조와 환경변화에 따라, 태어나고 사라져왔다.

 그런데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관념체계가 있으니, 사회주의와 민족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사회주의는 소련과 동구의 붕괴로 그 실험이 실패로 검증됐으나, 사회주의 신봉자들은 역사상 한 번도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가 시도된 일이 없었으므로, 실패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민족주의 또한 그러하다. 한때 민족주의는 사회주의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산물로 보였다. 즉 1945년까지 세계대전의 원인이었고, 식민지 유물로서, 글로벌환경의 국제관계에서 불합리한 장애 요인으로, 강대국 간 평화구축 이후 잊혀진 것으로 여겨졌으나, 실상은 오늘날에도 가장 강력한 정치적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시진핑의 ‘중국몽’패권이 민족주의 발현의 대표적 예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정치지도자들이 그들 자신을 애국심으로 위장해 민족 감정을 선동적으로 촉발함으로써, 민족주의를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예를 이번 한일 간에 전개되는 전략물자 수출규제 갈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8월 2일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했다.

 백색국가란 ‘안전 보장 우호국’을 뜻하며, 안전 보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첨단 기술이나 물품, 전자 부품을 수출할 때, 상호신뢰 관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허가 신청이 면제되는 국가를 의미한다. 일본은 그 배제 이유로 한국으로 수출된 전략물자 상당 부분이 북한으로 반입돼 화학무기 등 전용 가능성을 들어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관리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러한 일본 조치에 이 정부는 경제보복, 경제전쟁, 침략전쟁 등 구호로 일본을 규탄했을 뿐 아니라, 여당, 일부 언론과 지방자치단체도 이에 합세해 연일 일본제품, 여행에 ‘No’를 외치고 있다. 또한, 일부 세력들은 이에 동조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토착 왜구, 친일파’의 프레임을 씌우고, ‘죽창, 이순신 장군, 도공’ 등의 저항언어를 동원하며, 반일민족 감정을 증폭시켰다. 이러한 반일감정이 여당의 총선전략에 유리하다는 보고서도 나왔다고 한다. 급기야, 우리 정부도 8월 12일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가깝게는 작년 10월 30일 우리 대법원이 징용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판결과 피해자 대리인이 일본 기업으로부터 압류한 자산의 매각 명령 신청을 통해 현금화에 착수하겠다는 의사표시에 기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원적인 한일 간 갈등은 북핵 처리 문제에서 나타난다.

 한국이 북한에 대해 유엔제재를 완화시키려는 움직임에 반해, 일본은 국제공조의 철저한 제재를 통해 자국의 안보를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미·중 경제전쟁과 중국의 패권야욕이 초래할 수 있는 동아시아의 장기 안보 측면에서, 이 정부가 친중에 가까운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는 반면, 일본은 중국과의 경쟁 상대와 도전자로서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려는 입장이며, 이를 통해 일본은 세계질서 강화에 적극적 역할 담당을 자임하고 있는 다른 점이다.

 이제 우리는 냉정하게 이른바 한일 간 경제전쟁의 손익계산을 생각해봐야 한다. 국가 간 분쟁에서 유리한 편은 상대적으로 의존도가 낮은 국가이며, 일본이 그러하다. 손자병법에도 ‘승산이 없으면 능히 싸움을 피해야 한다. 그러므로 소수의 병력이 아무리 견고해도 큰 적의 포로가 됨’을 경고하고 있다. 더욱이 이 싸움에서 우리를 도와줄 원군이나 중재할 국가도 없다. 따라서 한일 간 현안 문제는 경제전쟁이 아니라 외교 노력을 통해 풀어야 한다. 과거의 역사는 기억해야 하지만 이는 오늘을 위한 반면교사 역할 때문이며, 이웃은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할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날로 확대되는 미·중 전쟁이다. 미국은 이 전쟁을 ‘문명과 문명, 세계관과 세계관의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다. 즉 ‘미국의 국가안보와 미국 가치에 반하는 것에 대한 싸움’이라는 것이다.

 ‘달리는 기차에서 중립은 없듯이’ 우리는 이제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가치동맹’을 선택해야 한다. 반 문명적인 사회주의나 낭만적 민족주의에 함몰돼서는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의 정치를 만들므로’ 우리 각자 모두가 깨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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