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영복 사장이 인천시 중구 경동에 위치한 가게에서 장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970∼80년대 이 거리는 인천의 명동거리로 불렸어요. 가구점, 양복점 등 다양한 상점들을 찾는 사람들로 꽉 찼었습니다. 지금 경동구역 재개발이 된다고 하는데 최소한 그때까지는 이 자리를 지켜야죠."

고영복(67)인천만물(중구 개항로 86) 사장은 올해로 30년째 인천의 명동에서 불교·농악용품을 파는 자신의 가게를 지켰다. 주변 가구점, 양복점 등 점주들이 다른 곳으로 떠났지만 아직 인천만물을 찾는 단골손님이 있어 떠날 생각이 없다.


그는 "신라·한미·인성양복점 등 양복 맞추러 오는 사람들이 1970∼80년대 이 거리를 전성기로 이끌었다"며 "1990년대부터 돈을 번 상인들이 주안·부평·연수동으로 옮겨 가 이 동네 상권이 죽기 시작했다"고 기억했다.

고 사장은 인천만물의 3대 사장이다. 고 사장의 처형인 고(故) 김상윤(1938년생)2대 사장에게 물려받았다. 김 사장은 여주 출신이다. 창업주는 충북 출신으로 1965년부터 인천만물을 경영했다. 1970년 창업주가 인천만물을 물려줄 때 김 사장은 거래처 직원이었다.

인천만물이 처음 문을 연 곳은 인천기독병원 앞 약국 자리였다. 김 사장이 가게를 인수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김 사장이 작고하면서 창업주의 성명, 생년 등을 알지 못한다.

▲ 인천시 중구 경동에 위치한 인천만물사 전경.
1970년대 충남 천안에서 인천으로 올라온 고 사장은 옛 인천대학교 앞(제물포역 인근)에서 체육사를 했다. 서울체육사라는 간판을 달고 인천대와 선인재단 학교들을 상대로 사업을 벌였다.

그는 "1970년대는 메이커 매장이 없어서 학교에서 쓰는 체육용품, 학생들 체육복 등이 잘 팔렸다"며 "1980년대부터 메이커 매장이 계속 생기면서 체육사가 어려워졌다"고 회상했다.

1990년 고 사장의 어려운 상황을 안 김 사장은 인천만물을 운영해 보라고 권유한다. 호황이 지난 만물상이었지만 고 사장은 이를 받아들인다. 처자식 먹고살 걱정 때문이었다.

인천만물은 1980년대 가장 호황이었다.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등이 확산하면서 대학생, 노동자를 중심으로 풍물패가 늘었기 때문이다. 당시 인천만물은 인천에서 유일하게 농악용품을 팔았던 곳이다. 인천만물의 아류 가게도 생겼었지만 2000년대를 지나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고 사장은 "충남 당진·태안 등 충청권과 경기권 손님 등 배로 왕래가 가능한 곳에서 장구와 북을 사 갔다고 하더라"며 "학생들이 줄고 농악도 안 하고 불교도 인터넷, 휴대전화 등이 나오는 바람에 지금은 하향세지만 은율탈춤, 일부 학교·동 주민센터 등 인천만물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 인천만물사 내부에는 불교 용품과 무속신앙에 관련된 용품을 비롯해 농악놀이에 쓰이는 전통악기들이 진열돼 있다
불교용품도 세월의 흐름에 맞춰 변화했다. 법당에서 쓰는 호롱불이 전구를 이용한 전기용품으로 바뀌었다고 고 사장은 물건을 보여 줬다.

인천만물이 위치한 경동은 3년 전부터 커피숍, 음식점 등 새로 문을 여는 곳들이 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가끔 인천만물을 신기하게 여겨 들어오는 이들도 있다. 불상과 무속인들이 쓰는 물건을 보고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다. 기념사진을 찍고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물건은 거의 사지 않는다.

인터뷰 도중 손바닥만 한 불상을 사러 온 손님이 있었다. 물건을 판 뒤 고 사장은 "불상은 정성을 들여야 하는데 갖다 놓고 먼지만 쌓이면 집안이 어려워질 수 있어 예전에는 관광지 등에서 불상 사 온 사람들이 우리집으로 불상을 다시 가져오기도 했다"며 "우리 가게는 물건을 쌓아 둔 게 아니라 모셔 두는 것으로, 청소 물 올리고 닦아주고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고 사장은 은율탈춤 관계자들과 인연이 깊다. 인천은율탈춤위원회가 단골인데 농악용품을 주로 구입한다. 1년 1회씩 수봉공원에서 열리는 은율탈춤 공연을 보러 간다. 단골이면서 고 사장의 자랑거리다. 그는 농악 등을 가르치는 학원에 납품하는데 이곳 사람들도 소중한 인연이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단골 무속인들도 고 사장에게 소중하다.

고 사장은 "무속용품을 판다는 사람들의 선입견이 가장 아쉽다"며 "무속인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인데 시선이 곱지 않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좋지 않다. 무속행위도 우리가 지켜야 할 전통문화 중 하나라는 인식이 퍼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고영복 인천만물 대표가 지난 20일 인천시 중구 경동에 위치한 가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경동·율목동·용동 등 인천의 명동거리 주변에 살았던 고 사장은 빌라가 몇 개 생긴 것 빼고 이 주변은 변한 게 없다고 했다. 최근 이 주변에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지난 6월 코오롱글로벌이 2천800억 원 규모의 중구 경동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시공자로 선정됐다. 중구 개항로 105-2(경동) 일대 4만1천970㎡에서 지하 5층·지상 35층 공동주택 1천161가구와 업무·부대복리시설 등을 지을 계획이다.

고 사장은 경동의 재개발 소식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낡은 경동구역이 발전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만 재개발이 되면 인천만물을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만물상이 인천에 거의 없다"며 "개발될 때까지 있을 것이다. 코오롱에서 한다고 하는데 될지 안 될지는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아쉬워했다.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사진=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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