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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서풍받이. 인천 사람이지만 그 이름을 처음 알았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받는 커다란 바위라는 의미라는데, 낙조를 받아 눈부신 대청도의 서풍바위를 맞으며 주저앉고 말았다. 인천 토박이라면서 이제 만나다니. 지금 이 자리에서 가슴 미어지게 하는 기쁨을 여태 몰랐다니. 장구한 풍상을 품고 황금색으로 빛나는 서풍받이 앞에서 송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인터넷을 열고 검색하니 과연 많은 이의 격찬이 이어졌다.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느라 서풍바위를 몰랐다니. 하지만 인터넷으로 본 서풍받이는 현장에서 만난 경관과 차이가 컸다. 며칠 안 된 감동이 오롯이 남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서풍받이의 백미는 방문 계절과 시간에 관계가 깊겠다 싶다. 먼지도 없이 맑은 날 저녁 무렵이 어울리리라. 붉은 노을이 해수면 가까이 내려오며 황금 광채를 뿜어낼 때, 방문객은 그만 주저앉아 찬란한 눈물을 흘릴 수 있겠지.

 두무진으로 빛나는 백령도는 대청도와 더불어 해식해안이 아름답다. 평범한 언어, 그저 "아름답다"는 언어로 부족하다. "찬란하다"는 경탄도 모자라게 만드는 경관 앞에서 가슴이 저려온다. 수억 세월 동안 자연의 풍상을 끌어안은 바위는 방문자에게 기쁜 눈물을 선사한다. 그 순간을 함께 찾은 이들과 공유하면서, 아직 방문하지 못한 지인에게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고민해본다. 하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이 쏟아져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서풍받이와 두무진은 물론 대청도와 백령도, 그리고 인근 섬의 해식해안의 절경이 국가지질공원에 지정됐다. 그럴 가치가 충분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학술적 가치뿐 아니라 눈부신 경관이 잘 보전돼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휴가철이 지나 서풍받이를 찾는 이 많지 않았지만 국가지질공원 지정 소식을 전하는 뉴스 화면을 보니 걱정이 커진다. 먼발치에서 장엄한 장관에 감격하는 방문객도 있지만 굳이 바위틈까지 비집고 올라 인증샷에 여념 없는 몰지각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백령도 콩돌해안은 얼마 전까지 군부대의 허락을 받아야 찾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한다. 20여 년 전 학술조사팀의 일원으로 찾았다. 콩팥 알처럼 자그마한 돌멩이부터 반쯤 사용한 세숫비누처럼 납작한 돌멩이까지, 바닷물에 달그락거리는 콩돌들의 소리에 매료됐고, 돌멩이 몇 개를 호주머니에 냉큼 넣었는데, 지금은 주민들이 방문객에게 주의를 당부한다고 한다. 콩돌해안의 돌멩이는 그 자리에서 달그락거릴 때 가장 예쁘다면서. 다음 방문할 때 지금도 책상을 장식하는 그 돌멩이를 제자리에 돌려 놓아야겠다

 신문을 보니 콩돌해안의 돌멩이가 대거 사라진 모양이다. 방문객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바닷물 흐름으로 쓸어갔다고 보도한다.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리는데, 원인이 궁금하다. 모진 태풍이나 해일도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달그락거리게 했건만 왜 갑가기 사라진 걸까? 인공 제방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주위에 예전에 없던 제방이 있지 않나?

 두무진과 콩돌해안, 서풍받이와 옥죽동 모래해안, 그리고 풀등에 이르기까지, 인천의 섬들이 갖는 매력은 지구상 어떤 지역과 비교할 수 없다. 그 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경관을 독특하게 연출한다. 많은 이가 찾아와 감격을 공유했으면 좋겠지만 차분했으면 좋겠다. 경관이 지역의 문화로 보전될 때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방문객 수를 늘려 수익을 확대하려는 의지로 길을 넓히고 근사한 숙박시설을 위해 외지 자본을 끌어들인다면 감동은 머지않아 시들해지겠지. 인천의 섬들도 마찬가지다. 지역 고유의 분위기에서 자연경관을 영원히 만끽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급증하는 관광객으로 비행장 증설이 시급하다는 제주도는 시끄럽다. 제주도를 기억하게 했던 경관과 문화가 훼손되니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식어간다. 돈을 앞세우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관광은 이제 퇴조한다. 유럽의 유서 깊은 관광지마다 분별 없는 관광객을 거부하자는 목소리가 드높다. 방문자의 자세로 지역을 배려할 때 관광은 지속가능해진다. 서풍받이의 감동도 오래 빛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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