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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시조시인

대개 어릴 때 알게 된 일은 사실로 믿고 지낸다. 요즘 문제적 고위 공직 후보자의 자기변명 투의 이기적 편향은 도를 넘었지만,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근대까지 수수천년 우리 국문자의 자리를 지켜온 한자는 누가 만든 문자인가. 오래된 문자일수록 단독 창제설은 납득이 잘 안 된다. 외려 여러 사람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게 더 수긍이 가지 않나 싶다.

 "누구는 어느 분야 처음이요 무엇은 어느 부문 최초라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처음 아닌 게 없다. 중국 창힐의 갑골문자보다 천년이나 앞선 신지의 골각문자가 이 시대 동이족의 땅 산동에서 발견되고…."

 2008년 골각문자 발견 보도를 보고, 그때 지은 나의 산문시 ‘이 세상 모두가 처음 아닌 게 없다’의 일부다. 시적 상상력이긴 하지만, 당시 나는 은연 중에 창힐을 한자의 뿌리라는 갑골문자와 연결시켰다.

 「삼성기」나 「태백일사」에는 창힐이 배달국에서 글을 받아 배웠다고 한다. 배달국 초기 신지 혁덕이 서글(書契, 한자)을 만들었다면 훨씬 뒤에 태어난 창힐이 배웠다는 건 사리에 맞다.

 이처럼 유서 깊은 고문자일수록 사용 시대와 주체에 따라 창제자가 달리 알려질 수도 있겠다. 지난번 2회에 걸쳐 쓴 기호포럼에서 나는 한자를 우리 한민족이 만든 문자라고 추단했다.

 우리말의 보다 정확한 한자발음, 골각문이 발견된 지역, 중국측 석학들의 인정 등등을 그 사유로 들었다. 창힐이 동이족이라는 설도 있으니 이래저래 태고한자는 우리 겨레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중국 문자학자 낙빈기는 금문(金文) 연구에서 4천500년 전쯤의 중국 대륙상고사는 동이족의 역사이며 문자는 동이족이 만들었다고 했단다. ‘금문’은 청동기에 새겨진 문자다. 1988년 발간된 그의 저서 「금문신고」(800부)는 중국당국의 금서로 정해져 회수됐다고 한다. 20세기 들어 중국 문호 노신이 한자망국론을 편 이후, 중국에서는 이른바 그들의 나랏글이 어렵다 해 간체자로 바꿔 쓰고 있다.

 원래 누천년간 써오던 한자가 번체자라 해 폐기상태에 이르렀으니 자못 역설적이다. 우리는 쉬이 배워 쓸 수 있는 구어체 문자인 한글이 있으며 아울러 우리 한자는 엄연히 살아 있다. 문어체 문자인 한자는 나름의 장점을 살려 ‘병기’(倂記)와 같이 보완적으로 쓰면 된다. 이처럼 한자는 우리 언어 표현에 조화로이 기능한다.

 우리는 한때 한겨레 혼백인 말과 글을 다 잃을 뻔했다. 국어, 국문이라는 말도 쓸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초반, 캐나다인 선교사 제임스 게일은 한국인이 쓰는 한문은 중국인이 쓰는 한문과 다르다고 했다. 한글 발전에 이바지한 그는 또한 우리의 한문학을 높이 샀던 한자옹호론자였다.

 미국인 여류 동양미술사학자 존 코벨은 1980년대 칼럼에서, 한국으로부터 문자를 전수받은 일본이 일제 때 되레 일본어를 쓰도록 강요했던 그 만행을 규탄했다. 이즈음 주변 강국들이 사방에서 우리를 아프게 한다. 바로 무역·영토 전쟁에다 역사·문화 전쟁이다. 정부는 냉철하게 안보외교와 경제를 챙기고, 국민은 혼줄을 단단히 다잡아야겠다.

 말은 그 화자나 민족의 얼이며, 문자는 그 얼을 담아 표현하는 질그릇과 같다. 질그릇이 깨지지 않도록 갈무리할 때 역사와 문화를 지킬 수 있다. 한자는 우리가 만든 자랑스러운 문자다.

 2008년 유럽 한국학 선구자 마르티나 도이힐러가 한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한자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몹시 안타깝다. 한글이 우수한 글자임에는 틀림없지만, 한국의 전통문화가 담긴 한자공부를 병행할 때 한글의 우수성도 더욱 빛날 수 있다."

 제 것을 제 것이라 하지 못할 때 우리는 울분한다. 「실용대옥편」의 편찬자 장삼식은 그 서문에 "한문자는 음운과 의훈 내지 강독법까지 중국과 같지 않다. 역사적으로 한국적인 한문자가 따로 존재할 수 있다 하여도 망론이 되지 않는다"라는 취지로 썼다.

 백번을 양보해도 우리가 우리 식으로 읽고 쓰는 한자는 한국문자다. 한자를 익혀 쓰기가 어렵다 해 무조건 배척할 일이 아니다. 순수 한글 고유어만으로는 언어생활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면 15세기 훈민정음 반포 이전 우리의 정신문화는 멀어질 수 있다. 이제 제 것을 제 것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차분하고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때다. 우리나라 유일의 전통 정형시인 ‘시조’(時調)도 우리말 한자어다. 한 수 올린다.

 - 서글의 말 -
 
 어이하여 긴긴 나달
 밖으로만 돌았을까
 
 오천여 년 지나설랑
 이제 저를 찾아주니
 
 나도야
 마음 다잡고
 자리 맞춰 앉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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