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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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을순 인천문인협회 이사/시인
  • 기호일보
  • 승인 2019.09.10
  •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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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을순 인천문인협회 이사
보리 이삭 피고 알알이 여물 무렵이면 꽃게는 살이 오르고 알을 품어 종족을 퍼뜨린다. 그 계절에 맞춰 꽃게를 좋아하는 가족들을 위해 연안부두에 갔다. 수산시장 입구부터 싱싱한 꽃게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꽃게 4kg을 구입한 후 마른 조기 스무 마리와 건조된 문어 다리도 다섯 팩을 샀다. 마지막으로 병어 한 마리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서다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흥건히 젖은 바닥 위로 발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 자유자재로 잘 걷던 몸이 꼼짝할 수 없었다. 결국 119 응급차에 실려서 병원으로 이송됐다. 척추 압박골절이라는 진단을 받고 그날로 병원 입원실 침대에 누웠다.

 살다 보면 오르막 내리막 인생길을 간다고 하지만 이렇게 몹시 다쳐본 일은 처음이다. 신체의 자유를 잃고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자니 생각의 문도 닫혔다. 그 당시 나는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셋째 날 누군가 "일어나라!" 외치는 소리에 퍼뜩 눈을 떴다.

 주위를 돌아보았다. 입원실에는 다섯 명의 환자들이 있었다. 다리를 휠체어에 매단 환자, 한 발로 깽깽 뛰는 환자, 꼬리뼈가 3개나 주저앉아 눕지도 못하고 허리 보호대를 찬 채 온종일 문병 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병에 관해 설명하는 환자, 그리고 머리를 움켜쥐고 다니며 "나는 고기 체질이래. 소고기 살코기를 먹으면 머리가 안 아파!"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환자도 있었다. 환자 중 83세의 노인은 머리카락을 빨간색으로 염색하고 늘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어느 날 오후 노인의 입에서 간드러진 민요 한 소절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평생 한옥 대청마루에 앉아 평생 장고를 메고 민요를 부르며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치매 환자가 돼 허리디스크를 앓는 큰딸과 함께 병원에 입원하게 됐단다. 치매 환자인데도 민요의 가사 한 줄 틀리지 않고 부르는 그 노인을 보고 있자니 나도 아직 젊고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부터 나는 침대에 전신을 밀착시키고 부동자세로 숨죽이고 있는 인체의 세포들에 깨어나라고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외쳤다. 매일 결심을 다져봤지만, 몸은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고 누운 채로 밥을 받아먹는 나날이 계속됐다. 허리 보호대를 착용하고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되자 보행기에 매달려서 용변을 보러 다녔고 일주일이 지나 회복기에 들어섰다. 입원하고 14일이 되던 날 완치가 되지도 않았지만, 의료보험법에 의해 퇴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또 한 번 절망감이 왔다. 집에서 불편한 몸으로 생활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의사 말로는 회복이 빠른 편이니, 지시대로 따르면 괜찮을 것이라고 했지만 왠지 불안했다. 치료 경과를 들으러 다시 병원에 올 용기도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스스로 일어나자 다짐하던 용기는 어디로 갔는지 밤잠을 못 자고 날이 밝았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누워있는 것이 일과였다. 일어서서 다니려면 여전히 허리 보조기를 차야만 했다. 하릴없이 창밖의 건너편 아파트 정원수를 바라보거나 오가는 자동차들을 내려다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문득 하루 일정표를 짜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약도 지어 먹고 칼슘이 풍부한 식품군을 찾아서 먹기로 했다. 오로지 건강을 위한 식단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퇴원 2주 후, 주치의와 첫 면담을 하는 날이다. 연안부두 수산시장에 장을 보러 간 후 28일 만의 첫 외출이었다. 신발을 신고 주차장까지 한 발 한 발 힘차게 걸어가면서 희망의 힘이 솟았다.

 인간의 삶이 평탄하지만은 않아서 때로는 절망하고 좌절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았다 잡았다 하는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인간의 삶을 향한 의지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강하다는 사실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말했다. "그림을 그릴 재능이 없다는 내면의 소리가 들리더라도 계속 그려라! 그러면 그 소리는 잠잠해질 것이다!" 나 역시 지금의 상황이 힘들다 해도 묵묵히 그 시간을 견뎌내면 언젠가는 반드시 나아질 것이란 자신감이 들었다.

 누군들 굴곡진 삶을 원하겠는가만 강물이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것은 산소를 흡수해 스스로를 정화하기 위함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되새겨 본다. 병상에서 깨달은 그 신념으로 내 인생의 소중한 한 페이지를 또 한 장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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