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9일은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개막 5주년이 되는 날이다. 하지만 대회 개최 이후 인천은 흔적 지우기로 시민들과 인천체육인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고 있다.

1조5천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한 국제대회가 연결고리 부재로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본보는 인천 아시안게임 5주년을 맞아 인천 아시안게임의 의미를 되새기고 인천체육사에 기억될 수 있는 방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19-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개회식이 열린 19일 오후 화려한 카운트다운 축포가 인천광역시 서구 연희동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을 수놓고 있다.jpg
▲ 사진 = 기호일보 DB
2014년 9월, 인천은 아시안게임 개최로 도시 전체가 술렁였다. 국내에서는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2015 광주유니버시아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대회가 연이어 개최될 예정이라 관심은 인천아시안게임으로 쏠렸다. 국제적으로는 아시아게임 최초로 스포츠 약소국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젝트인 ‘VISION 2014’와 북한의 대회 참가 등으로 큰 이목을 끈 대회였다.

하지만 대회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주경기장 신설 등 대회 개최에 드는 비용 약 2조 원(경기장 건설 1조5천억 원, 대회 운영비 4천953억 원)을 시민 혈세로 투입해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국제스포츠계는 인천 아시안게임을 성공적 대회로 평가했다.

먼저 여느 대회보다 알뜰하게 치러졌다는 점이다. 국내 세 번째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은 총 1조9천억 원이 투입됐다. 이전 대회인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총 2조4천97억 원,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은 5조7천828억 원 등이 투입됐다. 대회 운영비도 인천 아시안게임은 당초 예상했던 5천454억 원보다 502억 원을 절약한 4천952억 원을 사용하는 데 그쳤다.

스포츠이벤트 측면에서 인천 아시안게임은 2010년 광저우 대회보다 3개나 많은 17개의 세계신기록과 34개 아시아신기록 등 풍성한 신기록을 양산했으며, 북한도 참가하면서 45개 회원국 모두가 인천을 찾은 퍼펙트 대회로 기록됐다.

여기에 대회 때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했던 아시아 스포츠약소국 30개국 696명을 지원, 총 7개 메달(금 1개, 은 1개, 동 5개) 획득을 도운 ‘VISION 2014’ 프로그램과 임시 시설물, 차량 2부제, 탄소배출권 확보 등 자구 노력을 인정받아 아시안게임 최초로 국제표준화기구(ISO)로부터 ‘저탄소 친환경 대회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천 아시안게임은 불과 5년 만에 기억에서 잊히고 있다.

2006년 3월 쿠웨이트에서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를 위한 첫 프레젠테이션 이후 세 번에 걸친 차별화된 유치설명회와 다양한 전략을 통한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 타당성 홍보, 인천 오피니언리더들의 지원 등이 이어지면서 2007년 4월 쿠웨이트에서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를 성공시켰다.

아울러 2014년 9월 19일 인천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던 개막식, 15일간 아시아와 한국을 흥분의 도가니로 빠트렸던 대회 현장, 아쉬움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던 폐막식 등의 순간들은 인천을 넘어 아시아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는 게 체육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대회 일원으로 참여했던 인천 스포츠계 한 원로는 "5년 전 인천 아시안게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찬다"며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우리 고장에서 개최된 국제대회라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큰 대회가 5년 동안 인천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며 "이제라도 관계 기관이 5년 전 그날의 감동과 열정을 되돌아보는 사업들을 하나씩 추진해 시민들과 함께 했던 대회로 기억되길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최유탁 기자 cyt@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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