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1894년 8월 청일전쟁 중 일본은 조선과 ‘조일잠정합동조관’을 체결해 경인철도 부설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 조약은 철도 부설에 관한 협약의 우선권을 일본정부나 일본회사에 부여한다는 것을 잠정적으로 보증한 것에 불과한 것이어서, 일본이 철도부설을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조약이 체결돼야만 했다.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의 삼국간섭이 일어나고, 조선 정부는 러시아 세력을 활용해 일본을 견제하려 하자, 일본은 이해 10월 8일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저지르고 말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고종은 이듬해 1896년 2월 11일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아관파천)함으로써 일본세력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고, 일본의 만행은 격렬한 의병항쟁을 촉발시켰다. 아관파천 이후 반일 여론이 비등한 와중에, 미국공사 알렌은 고종에게 1년 내 기공식을 조건으로 경인철도 부설권을 요구해, 아관파천 50일 만인 3월 29일 철도부설권은 미국인 모스에게 양도됐다. 

 모스와 체결한 ‘경인철도특허조관’에는 특허일로부터 12개월 내에 기공, 그 후 3년 안에 준공하며 이를 위반할 시 특허의 효력이 상실된다고 규정돼 있었다. 모스는 부설공사가 결정되는 것과 동시에 본국으로 돌아가 자금조달에 동분서주했으나 한국 사정에 어두운 미국의 자본가들이 선뜻 투자에 응하려 하지 않았고, 철도부지에 포함돼 있는 일본인 지주들과 협상이 이뤄지지 않아 난관에 봉착했다. 모스는 1897년 3월 22일 오전 9시, 효력 정지 1주일을 남겨놓고 인천 우각동에서 부랴부랴 기공식을 거행했다. 모스의 자금난은 심각한 상태여서 당일 기공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한다.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일본 측은 ‘경인철도인수조합’을 조직해 1897년 5월 ‘18개월 내에 완공한 뒤 인수조합에 양도하는 계약’을 모스와 체결했다. 토목공사가 반 정도 완료된 시점이었다. 덕분에 모스는 기탁금 5만 달러를 받아 새로이 공사를 진척시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약점을 알고 있는 모스는 재차 ‘완전 매각’ 줄다리기에 들어가 일본으로부터 최대한의 금액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연후 경인철도인수조합은 경인철도 일체를 매입한 후 설계를 일부 변경해 1899년 4월 23일 인천역에서 제2차 기공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계약기간인 1900년 3월까지 준공할 가능성이 없어지자, 가장 난공사인 한강철교를 완공하지 않은 채 1899년 9월 18일 가영업을 시작했다. 일본은 외교적 압박을 행사해서 준공 기간을 6개월간 연장하는데 성공했다. 근대식 토목 공사로는 가장 규모가 컸던 한강철교 공사는 1897년 착공해 교각의 일부가 완성된 상태였고 1900년 7월 5일 완공됐다. 그리고 인천과 서대문 간 경인선 시운전을 마친 후 7월 8일부터 경인선 가영업을 시작해 4개월간 가영업을 끝내고 11월 12일 출발지인 인천역과 종점역인 서대문정거장에서 경인철도 개통식을 거행했다. 서글프게도 조선 최초 경인철도 개통식에 일장기가 나부끼는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그러나 일본은 한강 철교의 인도교도 가설해야만 했었다. 처음의 계약에 따르면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다리 한쪽이나 양쪽에 ‘보도(步道)’를 만들어야 하며, 선박의 운항을 위해 개폐부를 만들거나 충분히 높게 가설하도록 규정’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부설 계약을 ‘완전’ 인수한 뒤 공기(工期) 지연과 과다한 공사비에 대한 불만을 숨기고, 인천 거주 일본 거류민의 편의를 위해 하루속히 완공시켜야 한다는 핑계를 내세워 ‘보도 가설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한강에 인도교가 설치된 것은 그로부터 17년 뒤인 1917년에야 이뤄졌다. 

 2018년을 기해 ‘철도의날’이 우리 정부 최초의 ‘철도국’이 창설된 날짜인 6월 28일(1894년)로 변경됐다. 기존 경인철도 개통식이던 9월 18일이 ‘일제 잔재’라는 이유에서였다. 이참에  ‘한국철도최초기공지(韓國鐵道最初起工址)’ 표지석도 제자리를 찾아야 하고, 노량진역 구내에 세워진 ‘철도시발지’ 기념비도 인천역으로 옮겨져 와야 마땅하다. 경인선의 시발점은 인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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