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연 인천문인협회 회장
김사연 인천문인협회 회장

판관 포청천! TV 방송을 통해 익숙한 이름이다. 그는 999년, 송나라의 여주(廬州) 합비(合肥)에서 태어난 정치가로 본명은 포증(包拯), 별칭은 포공(包公)이다. 1027년(인종 5년) 진사(進士)에 급제, 건창현(建昌縣) 지현(知縣)이 됐으나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임한 효자이기도 하다. 1037년 다시 천장현(天長縣) 지현에 임명된 뒤 감찰어사(監察御使), 삼사호부판관(三司戶部判官), 하북로전운사(河北路轉運使) 등을 지냈다. 

 지방관으로 있을 때는 부당한 세금을 없애고, 백성들의 억울한 사건을 명료하게 해결해 줬고, 판관이 되자 부패한 정치가들을 엄중하게 처벌했다. 높은 벼슬에 오른 뒤에도 검소한 생활을 하여 청백리로 칭송됐다. 1062년 병을 앓다가 숨을 거두자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추증됐으며, 문집으로 「포증집(包拯集)」, 「포효숙공주상의(包孝肅公奏商議)」 등이 남아 있다. 그의 명성을 증명하듯 남송(南宋)과 금(金)나라 때부터 그를 주인공으로 한 문학작품이 등장했다. 「포공안(包公案)」은 명나라 때 발간된 수백 권으로 된 소설화본이며, 청나라 때는 「용도공안(龍圖公案)」 「삼협오의(三俠五義)」 「칠협오의(七俠五義)」 등의 장편소설이 나왔다. 

 드라마 내용처럼 민원인이 개봉부에 억울함을 호소하면 이마에 초승달 모양의 흉터가 새겨진 포청천은 빈틈없는 수사를 시작한다. 사건을 깊이 파고들면 범인은 깃털에 불과하고 숨겨진 몸통은 고위직이었다. 범인은 사건을 은폐하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포청천에게도 압력을 가하지만 결국 범행은 만천하에 드러난다. 

 시청자들이 드라마 포청천에 열광하는 이유는 죄가 있으면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처벌하기 때문이다. 그중엔 황제의 인척은 물론 자기의 친한 친구조차 예외를 두지 않았다. 이처럼 포청천이 소신껏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송나라 진종이 황제의 대리자라는 징표인 상황보검을 하사했기 때문이다. 약간 목이 쉰 음성의 성우 ‘노민’의 결기어린 명대사가 지금도 귓전에서 메아리친다. "작두를 대령하라! 작두를 열어라!" 이어 그는 왼손으로 오른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斬(벨 참), 또는 令(명령 령)자가 적힌 패를 죄수에게 던지며 "쳐라!" 하는 단말마를 지른다. 죄인이 극형으로 처형되는 순간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썼던 힘없는 백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정의와 윤리가 살아있는 믿음직한 국가에 감사와 존중을 표하고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하는 포청천의 공정한 판결에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반면에 화려한 권력으로 포장한 채 내로남불의 온갖 위선과 거짓으로 민심을 기만했던 죄인의 언행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데, 극형의 판결은 신분과 관계없이 만인에게 동등했지만, 형을 집행하는 작두는 신분에 따라 달랐다. 황족과 귀족은 황금으로 만든 용작두, 일반 관리는 은으로 만든 호작두, 평민 이하는 흑단으로 만든 개작두로 처형하고 잘린 목을 담는 그릇도 신분에 따라 황금대야, 빨간 바구니, 사발로 차별을 뒀다. 봉작두는 여성 황족과 귀족을 처형하는 데 사용됐다고 하나 실제로는 없었다고 한다. 양반은 물에 빠져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허우적거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중국(송나라) 귀족들은 죄인으로 처형되는 순간에도 체통을 소중히 여긴 듯하다.

 포청천 드라마 중 ‘진가포공’에서는 반역을 꾀한 익주 안무사 석국주를 처형하는 장면이 나온다. 포청천이 "호작두를 대령하라!"고 명하자 석국주는 역적질을 했으니 마땅히 죽어야겠지만 일반인들을 참형시키는 호작두는 자신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항의한다. 자신은 진명천자(眞命天子), 즉 하늘이 정한 진짜 황제이니 용작두로 처형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가 난 포청천은 호작두보다 더 천한 개작두를 대령하라고 명했고 석국주는 "용작두로 죽여 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참형을 당했다. 용작두는 호작두나 개작두와 달리 외양이 화려하다고 하는데 이승에서 마지막 예우를 받았던 죄인이 저승의 지옥에서는 어떤 차별 대우를 받을지 궁금하다. 

 포청천의 인기도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효력을 발휘해 당시 조순 교수는 ‘서울 포청천’이라는 이미지로 당선의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판관 포청천! 태평성대여야 할 촛불 민심 정국에 1천 년 전의 그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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