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괴롭다." 9·19 평양공동선언 1주년을 하루 앞둔 18일 김학권(75·재영솔루텍 회장)개성공단비상대책공동위원장이 고백하는 솔직한 심경이다. 개성공단 폐쇄로 쫓기듯 빠져나온 지 3년 하고도 221일째다. 두고 온 공장 설비와 자재들이 아직도 어른거린다. 재산을 잃은 회한이 아니라 희망을 빼앗긴 통탄에서다.
 

"지난해 9월 19일 평양에서 남북 정상이 경제 분야에서 합의한 내용이 뭡니까.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정상화였습니다." 김 위원장은 개성공단에 들어갈 날만 기다렸다. 하루이틀, 날이 더할수록 방북 기회는 점점 옅어졌다.

"개성공단 폐쇄로 남측 투자기업 125개 사의 손실 규모는 1조5천억 원대에 이릅니다. 인천 기업도 20여 곳에 달해요. 일반 국민들은 정부가 피해 기업에 보상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논의만 거듭했다는 게 김 위원장의 말이다.

투자기업 상당수가 개성공단 폐쇄 직후 자금줄이 막히고, 거래처가 떨어져 나갔다. 보험금으로 연명하다가 도산한 기업이 한두 곳이 아니다. 개성공단 투자기업에 원자재를 납품하고 완제품을 사들였던 연관기업은 5천여 개 사에 이른다. 이들 연계기업의 직원과 가족들만 해도 10만 명 정도다.

"가장 비통한 것은 경제를 경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색깔론으로 덧칠한 정치적 이해로 투자기업을 유린한다는 겁니다." 보수진영은 개성공단 노동자의 인건비가 엉뚱한 곳에 흘러 들어간다고 의심하고, 진보진영은 낮은 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비난을 쏟아내는 식이다.

김 위원장은 단호하다. 이런 의심과 비난은 상황적 인식의 부재에서 나온 오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노동자의 인건비가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쓰인다는 확증이 없고, 낮은 임금은 노동의 질과 숙련도에 따라 결정돼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태도도 탐탁지 않다. 통일부는 지난 5월 17일 투자기업들의 개성공단 방북 신청을 승인했다. 하지만 북한의 응답이 없다. 개성공단은 남북이 함께 잘사는 길로 나갈 수 있는 평화경제의 전진기지다. 북한 스스로 이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문제와 개성공단 재개로 거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미국의 태도도 내키지 않는다.

"개성공단이 정상적으로 가동됐더라면 한일 경제전쟁에서 부품·소재 업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어느 정도 극복했을 겁니다." 우리나라의 자본과 기술력,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할 경우 ‘made in china’까지 뛰어넘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김 위원장은 분석한다.

고문이 섞여 있을지라도 투자기업인들에게 그나마 남아 있는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면 당장 남북한이 나서야 할 일은 개성공단 방북의 길을 트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박정환 기자 hi21@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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