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작별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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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작별인사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19.09.20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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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긍정의 생각」이라는 책에 가난한 시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병상에 둬야만 했습니다. 자신은 무명의 시인이어서 차비조차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있는 병원까지 십여 ㎞를 걸어가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날은 아내의 생일이었습니다. 그는 철둑길 사이에 핀 예쁜 꽃을 꺾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삼 년째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내 곁에 그 꽃을 조심스레 놓고 그 옆에 그림엽서도 한 장 놓았습니다. 엽서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당신이 내 곁에 있어서 행복해."

 제가 가난한 남편이 되어봅니다. 엽서에 ‘당신이 내 곁에 있어서 행복해’라는 글을 쓸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철길에서 꺾은 꽃과 슬픈 사랑의 심정으로 쓴 엽서를 아내의 머리맡에 놓을 때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미소를 지으면서 놓았겠지만 마음속엔 눈물이 바다를 이뤘을 겁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기력한 자신이 무척이나 미웠을 겁니다. 그런 자신에게 시집와 평생 고생만 하다가 저렇게 의식을 잃고 쓰러져 아무 말도 못하는 아내에게 너무나도 죄스러웠을 겁니다.

 이번에는 아내가 되어봅니다. 삼 년째 말도 못하고 식물인간으로 살고 있습니다. 비록 말은 할 수가 없지만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를 느껴봅니다. 생활력은 없지만 그래도 착한 남편입니다. 신혼 때는 희망도 걸어보았습니다. 돈 벌 생각은 하지 않고 구석방에 하루 종일 틀어박혀 시를 쓰는 그가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병들어 죽음만을 기다리는 지난 3년 동안, 그렇게도 답답했던 남편만이 고독한 병실을 찾아줬습니다. 그런 그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동안 더 잘해주지 못해서 말입니다. 이젠 잘해주고 싶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나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늘 남편이 곁에 있어 안심이 됩니다.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사람들이 어떤 존재를 사랑하는 이유가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 존재가 자신에게 ‘유익함’을 주거나 ‘즐거움’을 주거나 또는 ‘그냥’ 그 존재가 있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겁니다. 

 자신에게 유익함이나 즐거움을 주는 사랑을 도구적 사랑과 쾌락적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랑은 지극히 이기적인 사랑이어서 그 사람이 자신에게 더 이상 유익함이나 즐거움을 주지 못하면 가차 없이 지금까지의 사랑을 차버릴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사랑은 ‘완전한 사랑’으로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사랑입니다. 가난한 시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곧 완전한 사랑입니다. 비록 식물인간이어도 아직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럽습니다. 문득 보고 싶을 때 느닷없이 찾아가 숨 쉬고 있는 그녀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라는 책에서 강렬한 삶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평생 산골에서 일하느라 허리가 굽고 치아는 하나밖에 없는 99세 노모를 위해 손수레를 만들어 900일 동안 여행한 74세 아들이 있다. 나는 제목을 이렇게 붙이고 싶다. ‘당신과 함께 하는 시간이 내 생에 가장 행복했습니다’라고."

 74세 아들 역시 가난한 시인처럼 ‘완전한’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하니 말입니다. 곧 100세가 되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지만 가난 탓에 그렇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은 손수레였습니다. 그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테니까요. 어머니에게 무척이나 미안해했을 겁니다. 가난한 자신을 탓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책의 저자가 제목을 붙이고 싶다는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이 내 생에 가장 행복했습니다’라는 글귀가 가슴 저미는 감동을 부릅니다.

 사랑하는 그 사람과 작별할 때 이런 말로 그와의 작별을 아름답게 마주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그 사람과 함께할 때 시인과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한없이 사랑해야만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그래야 작별마저도 이렇게 아름다운 울림으로 세상을 촉촉이 적실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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