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연옥 인천문인협회 회원
윤연옥 인천문인협회 회원

아들이 결혼을 했다. 아들은 결혼하면 며느리에게 맡기고 참견 말라는 충고가 이구동성이다. 지난날에는 시어머니가 음식을 만들어 아들 집에 가면 들어가지 않고 경비실에 맡기고 오라고 하더니 지금은 며느리가 집에 왔을 때 달라는 음식만 싸주라고 귀띔해준다. 아들 집이라도 방문하지 말라는 인생 선배의 말을 들으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어느 선배가 눈가를 적시며 들려주는 일화가 있다. 파김치를 담가 먹다 보니 역시 그 김치를 좋아하는 며느리 생각이 나서 망설임 끝에 달려갔다고 한다. 세 번이나 버스를 환승하며 찾아가 며느리에게 전해주고 곧 돌아섰다는 얘기다. 들어가 차 한 잔 하라는 며느리에게 외출 길에 잠시 들렀다 하고, 서둘러 발길 돌렸다고 털어놓는다. 왕복 3시간의 거리를 오가며 서운함에 눈물 훔쳐내게 되더라는 지인의 얘기에 그예 나의 눈물샘도 열리고 만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핵가족이 만들어 놓은 현상이다. 이 시대에 대부분의 시어머니가 아들네서 하룻밤 묵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라고 서운해 한다. 아들은 자고 가라는데 며느리는 끝내 말을 안 하더라며 그 섭섭함을 헛웃음과 함께 털어놓는 친구도 있다. 며느리와 자식의 효도가 전과 다른 게 아니라 시대가 달라졌을 뿐이다. 아들을 며느리가 채 갔다기보다 달라진 시대에 빼앗겼음이다. 어느 친구는, 딸의 시어머니가 먼 길 올라와 반찬만 전해주고 며느리 불편할까봐 호텔에서 자고 간다니까, 일하는 며느리를 배려할 줄 아는 멋진 시어머니라고 추어주는 소리를 들은 적 있다. 

지난날이 남아선호 사상이라면 요즘은 여아선호 사상으로 바뀌어 가는 듯하다. 무리가 아닌 것은, 일하는 딸들의 경제적 능력이 있어서이니 그것이 단점은 아니겠다. 유비쿼터스 시대에 살면서 두뇌회전이 빠른 젊은이들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으므로 부모와 격차가 난다. 당연히 세대 차이 앞에서 고부 간의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보고 듣고 배운 게 많아 결코 옛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음식솜씨며 말솜씨, 살림솜씨도 야무지다. 옛날 며느리는 안 그랬는데 또는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하며 불협화음이 쌓여가는 지인이 있다. 잘 익은 파김치가 맛이 좋듯, 김치마다 맛과 향이 다르듯 사람의 인성도 그러하다. 

요즘 아들딸들이 그 많은 것을 감당하기에는 벅차겠다 싶어 안쓰럽기도 하다. 효도하라고 채근하기에는 젊은 사람들에게 시대가 요구하는 게 많아 바쁘고 바쁘다. 안하는 게 아니라 시간에 쫓겨 못할 뿐, 기본은 있는 젊은이들이다. 곱으로 짐을 지고 가는 그들이 대견한 한편 미안하기도 하다. 감각과 실력 있는 젊은 부부를 따르지 못한다면 내 세대는 시대에 복종해야만 한다. 일을 하는 아들 며느리가 많아지다 보니 직장 따라 핵가족제도가 생긴 것이지 누군가 법으로 정해 놓은 것은 아니겠다. 직장 일과 살림과 부모 모시고 감각까지 키우라면 이 시대의 주부자리 누구나 다시 생각할 문제이다. 부모가 묵은 김치 맛이라면 요즘 젊은이들은 살아 있는 겉절이 맛이므로 융화하려 애쓰기 전에 각각의 맛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IT산업시대에서 내달리는데 옛것만 고집한다면 이치가 맞지 않으므로 이 시대에 풀어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해결이 OR코드에 있다면 시원하게 찍어나 보련만 문제는 시대의 변화, 정답도 그 안에 있을 법하다. 일출이 오늘 따라 역동적인 도시를 연출한다. 오늘은 가족 모임이 있으므로 서둘러 음식 준비를 한다. 아파트 뒤 주말 농장에 나가 쪽파 서너 줌 뽑아 파강회 만들고 파김치도 맛깔나게 버무려야 하겠다. 산다는 게 김치 익히기와 닮아 있어 몇 번이고 맛을 본다. 아들 며느리 대처법이 아니라 나의 가족이 돼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 내 며느리도 좋아하는 파김치 담는 그릇에 고마움이 함께 담긴다. 

▶필자: 「창작수필」 등단/13년간 인천지역신문  편집장 역임/수필집: 「내 삶의 반환점에서」, 「쉬운 말이 그리워」, 「그럼 그렇게 해」, 「옳거니 무릎을 치다」 외 /수상: 인천문학상, 인천문화상, 인천PEN문학상, 인천예총예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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