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제물포고 교감
전재학 제물포고 교감

얼마 전 옛 제자가 새로운 근무지로 필자를 찾아왔다. 어렴풋이 기억에 남은 제자로부터 전혀 기대하지 않은 뜻밖의 만남이라 너무도 놀랐다. 그 인연은 필자가 교직에 들어 선 후 2번째로 근무하던 1990년 초 무렵이니 거의 30년 만이다. 앳된 얼굴의 청소년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어 기억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새록새록 많은 사실이 떠올랐다. 

대화 중에 그동안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에서 IT분야 전문가로 살아온 모습이 역력히 느껴졌다. 이제는 이사 직위에 올라 연륜이 묻어나는 언행이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잔잔한 울림을 줬다. 

어떻게 아직도 필자를 기억하고 몸소 찾아올 생각을 했을까? 그녀는 대뜸 "선생님은 제 인생에 은인이십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저에게 꽤 큰 장학금을 받게 해주신 덕에 학교를 자랑스럽게 다녔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를 지속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어떻게 해서 한 학생의 마음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은인으로 간직됐을까?  

교사로 살아오면서 많은 학생을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곳에 추천을 해왔다. 장학재단은 물론이고 기업이든지 지자체든지 대학이든지 말이다. 지금도 사회적 기업들이 좋은 의도로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의 기회를 주고 있지만 당시는 그리 흔하지 않은 때였다. 

물론 학년협의를 거쳐 적격자를 선발해 처리한 사안이지만 최종 결정 단계에서 필자의 의견을 반영했으며 업무 담당자로서 최대한 정성을 기울여 추천서를 장시간 작성해 제출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성실하고 우수한 학생, 미래의 인재로 손색이 없는 적격자를 추천한 기회였고 그래서 좋은 결과를 얻어 장학재단으로부터 혜택을 받은 것이었다. 

그 결과가 한 학생의 삶에 자부심과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쳤고 그녀는 이를 계기로 더 열심히 공부해 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는 오늘에 이른 것이다. 물론 힘든 여정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부침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런 과거를 알고서는 교사로서의 무한한 자긍심을 느꼈다.

잠시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에는 사랑스러운 소년 친구가 있었다. 소년은 나무를 좋아했고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다. 세월이 흘러 소년은 자랐다. 어느 날 소년이 나무에게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나무는 자기의 과일을 팔아 쓰라고 했다. 소년은 그렇게 했다, 몇 해 후 소년은 다시 나무에게 집이 있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무는 제 몸의 가지를 잘라서 재목으로 쓰라고 했다, 소년은 집을 짓기 위해 가지를 베어 갔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청년이 돼 다시 찾아온 소년은 먼 곳으로 떠날 배 한 척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자 나무는 이번에는 제 몸통을 베어 만들라고 했다. 소년이 배를 타고 멀리 떠났다가 노인이 돼 돌아왔다. 돌아온 그를 위해 나무는 베어진 나무 밑동에 앉아서 피곤한 몸을 쉬게 해주었다. 그리고 잊지 않고 찾아 온 그 소년을 맞이한 나무는 더 없이 행복했다."

오늘날 학교의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한 편의 동화와 제자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학생에게 아낌없이 주는 사랑의 효과가 어떤 것인지를 사색할 수 있다. 교사의 사랑이 학생의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이고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있다. 사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의미 있는 삶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이뤄졌다. 

교사는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사랑의 전도사’가 돼야 한다. 특히 교육의 위기, 사제지간의 소원(疏遠)함을 말하는 지금이 그렇다.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 교사의 삶, 그것의 바탕에는 학생에게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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