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 무소속, 섬세는 1996년에 출시된 한 리얼리즘 영화 속 세 주인공의 이름이다.

영화는 학교와 사회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원도심 뒷골목 공터에서 배회하는 청춘들의 삶을 극사실적으로 다룬다.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한국 사회는 폭력이 굉장히 만연해 있고 폭력의 근원은 군대와 학교에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감독은 20대 청춘들이 피해갈 수 없는 군대 징집제에 대해 무겁고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여성성이 강한 섬세는 동네 건달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정신질환을 앓다가 남자로 거듭나기 위해 입대하려고 하지만 정신문제로 면제되고, 삼겹은 몸무게 초과로 입대가 거부된다. 입대할 준비가 전혀 안된 무소속은 각목을 삼겹에게 건넨 뒤 어깨를 가격당해 몸을 망가뜨렸지만 엑스레이 판독 결과 이상이 없어 훈련소로 끌려간다. 하지만 무소속은 군대 선임에게 폭행을 당해 귀가 멀어 의가사 제대를 한다. 영화는 제대한 무소속이 뒷골목 시장의 어두운 구석으로 걸어 들어가며 막을 내린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렀지만 강제 징집과 군 생활(인권)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현재 진행형이다. 인천에서도 최근 병역을 피하기 위해 20대 젊은이들이 디스크 탈출증, 천식 질환 등을 허위로 신고했다가 법의 심판을 받는가 하면 신체검사에 대리를 내세워 허위 진단서를 제출한 사례도 있다. 군대에 끌려 가고 싶지 않은 젊은이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데, 한편에서는 현역병 자원이 출산률 급감으로 자연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10여 년 전에는 현역병이 약 30만 명인데 지난해는 25만여 명으로 축소됐다.

이는 군대 안팎의 여건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면서 국방부가 50만 군대를 과거처럼 무조건 유지하기는 힘든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다. 동시에 자발적이면서 직업적인 ‘모병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될 때가 됐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한국국방연구원의 ‘2018 국방 사회조사 통계사업 보고서’는 이를 뒷받침한다. 징병제 유지와 함께 모병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에 조사 대상자 46%가 동의했고, 전면적 모병제 전환 찬성도 11.7%에 이른다. 자발적 직업군인 확대는 20대 소중한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며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폭력적 군대문화를 해소할 분명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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