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시조시인
김락기 시조시인

요즘 동남아에는 한국어 열풍이 불고 있다. 태국에서는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열렸는가 하면 제2외국어로 선택돼 올 대입시험에 반영됐다. K팝, K드라마 같은 한류 붐의 영향도 없지 않지만, 밑바탕에는 세종이 만든 한글의 우수성이 그 속내를 드러내고 있음이다. 한국어는 우리 국민이 사용하는 언어다. 형태상 교착어이며 계통상 알타이어족에 속한다. 표기는 한글과 한자를 사용하지만 요새는 주로 한글을 쓴다. ‘한글’이란 명칭은 일제강점기 국문, 국어라는 말을 쓸 수 없을 때 1926년 주시경이 ‘대한’의 ‘한’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한글의 원이름은 훈민정음이다. 

훈민정음해례본에 ‘협순이학’(浹旬而學)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정인지의 말이다. 그 바로 앞 글귀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이면 아침나절도 되기 전에 알 수 있다고 했다. 28자모를 익히는 것을 이르지만, 그만큼 쉬이 배우고 쓸 수 있음을 표현한 말이다. 이는 우리 국민의 약 80%가 5살이면 혼자 책을 읽을 수 있고, 우리의 문맹률이 0%에 가까운 세계 최저 수준인 것으로도 입증된다. 유네스코에서 언어는 있으나 문자가 없는 민족에게 한글을 쓸 것을 권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아울러 한국의 지원으로 1989년 ‘세종대왕문해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제정한 것도 유네스코다. 그 이듬해부터 매년 9월 8일 ‘세계문해의 날’에, 전 세계에서 문명퇴치에 기여한 자나 단체에 이 상을 준다. 올해는 알제리 국립 문해교육청과 세네갈 방직개발회사가 수상했다. 

학자에 따라 영문자로는 300여 가지, 중국문자로는 400여 가지 소리를 쓸 수 있는데 반해, 한글로는 1만1천여 가지의 소리를 쓸 수 있다고 한다. 어디 그뿐이랴. 앞선 칼럼에서도 말했지만 외려 이 세상 오만가지 소리를 다 쓸 수 있는 게 한글이다. 이를테면 바람과 학 울음소리, 닭 울음이나 개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할 수 있다고 해례본에 나와 있다. 지난 7월 미국의 석학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국내 모 일간지와 인터뷰했다. 남수단에서 문자가 없는 부족을 연구하는 어떤 인류학자는 한글로 그 부족의 말을 표기한단다. 「대변동」의 저자인 그는 수십 년 전부터 우리 한글의 탁월성을 극찬했다. 한글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뛰어난 문자 체계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단다. 그는 한글사용을 한국 최대의 장점으로 꼽았다. 한글의 과학적 창제원리에 탄복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세종은 무려 수십 번을 천문대(간의대)를 오가면서 28수 동양천문도에 따른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한다. 삼재사상과 음양오행·방위·수리·계절·오음·오상 같은 우주 및 인생철학이 속속들이 스며있는 문자이니 더 말할 수 없겠다. 인천공항에 처음 내린 외국인이 ‘주차금지’ 한글표지판을 보고 신기해하는 모습을 방송에서 본 일이 있다. 조형성을 가진 한글의 특색이다. 예술로 승화된 지 오래다. 2017년 스페인 사진작가 티노 소리아노는 한글을 하나의 예술품이라 했다. 

조형미로 번져나는 아우라. 이미 한글의 예술화는 전통 서예에서 캘리그래피로 그 활용 범위가 넓혀졌지만, 이즘은 도예, 목각은 물론 첨단 디자인 분야로까지 나아갔다. 올해 7월 세계 패션의 중심도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한글의상 패션전시회가 열려 각광을 받았다. 한글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한 국내외 의상 디자이너 작품 73점은 한글의 독창적인 우수성, 나아가 한국문화의 정수를 세계에 알린 셈이다. 이 행사를 주최한 박선희 한국패션협회장은 한글에 깊은 식견을 지닌 분임에 틀림없다. 

말은 하나의 생명체일진대 가슴을 열고 반겼을 한글이다. 때마침 서울 한글박물관에서는 한글디자인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변용의 마법을 부리고 있다. 그러면 외국인이 느끼는 현대 한국어의 문제점은 없을까. 우선 ‘한글’은 쉬우나 ‘한국어’는 어려워한다는 점이다. 한글맞춤법 따위 복잡한 문법체계나 높임말·낮춤말, 정확하게 써야만 하는 조사, 발음과 표기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것들이다. 특히 서술어의 다양한 활용 같은 표현방법을 힘겨워하면서도 한국어 특유의 아름다움이라 여기기도 한다. 세종의 문자혁명으로 탄생된 이 시대 최고의 자질문자 한글! 이제 국보 70호에서 제1호로 바꿔 지정돼야 한다. 시조로 읊는다.

- 한글 뜻풀이 -
 
 한겨레의 얼에 실려
 내 이어온 큰 글이다
 
 하늘과 땅 사람까지
 다 들어간 온 글이다
 
 누구나
 소리대로 쓰는
 맨 하나의 참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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