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뱀이 개구리를 삼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개구리를 구해줘야 합니까, 아니면 모른 척해야 합니까?" 라고 제자가 묻자, 스승은 "구해주지 않는다면 개구리는 죽겠지. 그러나 구해준다면 너의 두 눈이 멀어버릴 것이다" 라고 답해줍니다. 「조동록」에 나오는 선문답입니다.

살아가면서 늘 이렇게 두 개의 선택지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해야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이 질문을 제가 받았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참 곤혹스럽습니다. 약자인 개구리를 살리려면 뱀을 죽여야 하는데, 이 결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뱀 역시 억울해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뱀이라고 해서 나쁜 마음으로 개구리를 죽이려고 했겠습니까. 우리가 볼 때는 개구리가 소중한 생명체로 보일지 모르지만 뱀에게는 그저 먹이일 뿐입니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겠다는 뱀을 죽이는 것 역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사실은 마음이 불편할 이유가 전혀 없을지도 모릅니다. 상황을 바라보는 판단의 기준을 ‘나’에게서 ‘너’에게로 옮겨놓으면 답을 수월하게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뱀’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배가 고파 밥을 먹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므로 편안한 마음으로 그냥 지나치면 되겠지요. 만약 ‘개구리’의 관점에서 뱀을 죽인다면 그것 역시 약자를 지켜줬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해질 겁니다. 

「CEO 경영우언」에는 「장자」에 나오는 바닷새 이야기가 있습니다. 커다란 바닷새가 날아와 노나라 도성에 내려앉자, 왕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 새를 소중히 여겨 묘당에 안치했습니다. 그리고 그 새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궁중악대에게 아름다운 악곡을 연주하게 하고, 연회까지 열어 융숭하게 새를 대접했습니다. 그러나 정녕 바닷새는 연주하는 음악소리에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침침해졌습니다. 또한 융숭한 의식에 놀라서 혼이 다 빠질 듯했습니다. 그래서 식탁에 놓인 고기도 먹지 않았고 술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정신마저 이상해져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바닷새가 왕을 만나면서부터 둘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형성됐습니다. 왕에게 있어 바닷새는 귀한 대상이었습니다. 문제는 바닷새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왕인 ‘나’의 기준에서 대접을 했다는 점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당연히 바닷새도 좋아하리라는 그릇된 판단이 결국은 바닷새를 죽게 하고 말았습니다. 불행한 관계에는 어김없이 ‘나’ 중심적 사고가 숨어 있습니다.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작은 이야기」에 나오는 일화에서 같은 지혜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선물상자를 포장하려고 놓아둔 아주 비싼 황금색 포장지가 없어지자 아빠가 크게 화를 냈습니다. 어린 딸이 울먹이면서 말했습니다. 

"아빠, 그거 제가 꼭 필요한 곳이 있어서 썼어요." 

아빠는 딸을 혼내주었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사라져 버렸으니 그냥 잘 수밖에요.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딸이 어젯밤 일은 모두 잊어버린 듯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아빠에게 선물을 내밀었습니다. 황금색 포장지로 싼 선물상자였습니다. 아빠는 무척 기뻐하며 어젯밤 딸에게 한 질책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포장지를 풀었는데,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상자 안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닌가요. 아빠는 다시 화를 내며 소리쳤습니다.

"너, 지금 아빠를 놀리는 거니? 이 비싼 포장지로 장난을 치다니! 그리고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려면 포장 속에 무언가를 넣어야 하는 거야."

아빠의 꾸중에 딸은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그것은 빈 상자가 아니야. 내가 키스로 상자를 가득 채웠거든. 아빠에게만 주는 내 키스로."

아빠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딸의 행위가 무척 못마땅했지만, 판단의 관점을 ‘딸’에게 두고 생각해보면 참으로 대견스러운 행동으로 보일 것입니다. 상황 판단의 기준을 상대인 ‘너’에게 둬야 한다는, 즉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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