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림 칼럼니스트
김호림 칼럼니스트

기업에서 최고경영자가 바뀌면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있다. 즉 신임 사장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조직의 새로운 활력과 동력을 도모하고 동원하기 위해 외부 컨설팅전문가를 초빙해 기업의 비전, 사명, 목표, 전략, 전술 및 정책을 수립하는 일련의 전사적 이벤트를 진행시킨다. 이때 컨설팅 팀은 최고경영자의 숨은 의지를 충실히 반영한 결과물을 산출해 내고, CEO는 이를 근거로 자신 고유의 회사 경영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를 개혁이라 부르며, 기업은 모든 조직원에게 새로운 질서를 재편하는 변화에 동참하도록 강요한다. 

이러한 개혁 과정은 국가시스템에도 적용된다. 특히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할 때 그는 먼저 개혁이란 도덕성을 앞세워 자신의 핵심정책을 추진시킨다. 그러나 역사가 말해주듯 성공한 개혁은 그리 많지 않다. 성공의 경우는 대공황을 극복한 루스벨트와 영국병을 없앤 대처, 그리고 일본 막부를 재정 파탄에서 구한 요시무네를 꼽을 수 있으며, 실패한 사례로는 국가의 멸망을 초래한 북송의 왕안석과 관료사회의 붕괴를 자초한 조선조 조광조의 급진적 개혁이 있고, 비록 외세의 압력과 급진성에 의해 구한말의 문물제도를 근대적 국가형태로 고치며 전통적 질서를 타파했으나, 국민 전체의 커다란 호응을 받지 못한 갑오개혁과 을미개혁을 들을 수 있다. 

이처럼 국가개혁은 새로운 질서로 나라를 재편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설령 그 개혁이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구현하더라도, 대체로 사람들의 생각은 현재의 상태에 변화를 주는 모든 행위를 충격으로 받아들여 방어적으로 바뀐다. 

특히 기득권층은 그들이 누려오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반개혁의 편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개혁주도자들은 열정뿐 아니라, 명확한 비전을 국민과 공유해야 하며, 최고 권력자의 위세를 빌어 반대자를 강압적으로 억누르기보다 설득이 필요하며, 의식과 관행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이를 형성시킨 기존의 제도개혁을 병행해야 하는 총체적인 전략과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데 개혁이 근본적으로 실패하는 원인은 권력자가 자신의 특정한 정치적 목적달성의 수단으로 추진하기 때문이다. ‘정치적이란 것’은 곧 ‘동지와 적을 구분하는 것’이라고, 나치에 협력한 정치학자이자 공법학자인 칼 슈미트는 현실정치를 날카롭게 분석했다. 즉 정치란, 근본적으로 대립과 갈등을 선포하는 것으로서, 합의보다는 갈등의 요소를 더 강하게 지니는 분열의 행위라는 것이다. 

한편, 노나라의 권력자인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의 참뜻을 묻자 "정치는 올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대 자신부터 바르게 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으랴"(政者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라는 이상적인 유교적 왕도정치를 가르쳤다. 그런가 하면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신영복은 한겨레신문의 기고문에서 "막히면 변해야 하고, 변화하면 소통하게 되고, 소통하면 그 생명이 오래 간다"는 주역의 지혜(窮卽變 變卽通 通卽久)를 인용하며 "정치란 무엇인가? 평화와 소통과 변화의 길이다. 광화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길이다"라고 다소 상징적인 말로 정치를 해석했다. 

여기서 국가권력자가 분열의 정치를 의도한다면, 그는 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정치학자들은 ‘국가는 총과 칼과 형무소를 갖고 있는 특혜받은 유일한 집단’, 즉 ‘물리적 폭력의 사용을 독점하는 공동체’이므로 권력자에게는 권력 남용의 유혹과 위험이 상존해 있음을 경고한다. 또한,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느 특정한 집단이 자신과 추종자들의 이익을 위해 강제로 세운 것’이 국가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전체주의 국가와 북한체제를 보면 설득력이 있다. 결국, 분열의 정치는 특정 집단이 자신과 추종자들의 권익에만 봉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나라는 검찰개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 매우 혼란스럽고, 국민은 찬반양론으로 첨예하게 대립되고 나눠져 있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 공수처의 신설이라고 우려하는 주장이 많다. 왜냐하면, 그 법안에 포함된 내부고발의 의무화와 모든 공기관에 자료 제공을 요구하는 조항 문제뿐 아니라 공수처가 헌법과 정부조직법에 따른 국가기관으로서의 설치 근거가 없다는 논란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시스템의 개혁이 성공하려면 그 결과로 인한 편익의 최종 수혜자가, 특정 소수집단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이 되어야 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국민저항이 따르고, 개혁은 실패하게 될 것이다. 이러할 때, ‘막히면 변해야 하고, 변화하면 소통하게 되고, 소통하면 그 생명이 오래간다’는 주역의 지혜와 ‘정치란 무엇인가? 평화와 소통과 변화의 길이다. 광화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길이다’라는 선견지명의 시사점을 집권층과 국민 모두 성찰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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