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택진(54) 인천수어통역센터 사무처장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제공=정택진 수어통역사>
정택진(54) 인천수어통역센터 사무처장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제공=정택진 수어통역사>

‘농인(聾人)’은 못 듣는 사람이 아니라 잘 보는 사람이란 말이 있다. 농인을 신체적 한계에 집중해 정의를 내리지 않고 시각언어인 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나온 말이다.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풀어주는 통역사가 있듯 농인의 ‘수어’와 청인(聽人)의 ‘음성언어’를 이어주는 이가 바로 ‘수어통역사’다. 청각 이상으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소통을 돕는 수어통역사로 인천에서 30년째 활동하고 있는 정택진(54)인천수어통역센터 사무처장이 주인공이다.

정택진 수어통역사는 1984년 인천농아인협회에서 수어교육을 받고 부평 청각장애인 생활시설 성동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1989년부터 수어통역사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현재는 인천수어통역센터에서 사무처장을 맡으며 상황에 따라 수어통역과 수어교육을 하고 있다.

수어통역은 의료기관·관공서·금융기관·취업·교육 등 모든 일상 분야에서 필요하다. 통역사가 없을 때는 필담(글을 통한 의사소통)을 하지만, 적지 않은 농아인들이 음성언어를 기반으로 한 글쓰기를 익히는 데 어려움이 많다. 필담으로 중요한 계약을 하다 보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서명해 낭패를 보는 일도 많다.

정택진 수어통역사는 "새벽에 응급실에 가서 통역하다가 농인의 가족이 왔을 때 인계하고 병원에 나서는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며 "청인들 입장에선 별거 아닌 상황도 곤란함이 많은 농인들에게 입과 귀 역할을 마치고 나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인천수어통역센터는 올해 상반기 동안 1만6천468건의 통역서비스를 제공했다. 하지만 센터에서 근무하는 통역사는 모두 25명으로 업무량 대비 인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지역 농아인 수는 2만1천737명으로 통역사 1명당 농아인 869명을 담당하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농인이 취업을 위한 장기간 교육을 위해 학원을 다니고 싶어도 지원을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과 대전은 24시간 통역서비스도 운영하고 있지만 인천은 야간 근무를 전담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 대신 응급상황에 처한 농인을 지원하기 위해 1명의 통역사가 1주일씩 비상대기하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비상대기하는 직원은 잠을 자면서도 휴대전화를 머리맡에 두는 등 언제나 긴장 상태로 있는 고충을 겪는다. 이에 따라 시는 서비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내년부터 수화통역사를 주간 4명, 야간 3명 확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택진 수어통역사는 "수어통역사가 충원돼야 농아인들의 원활한 사회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며 "국민들의 장애와 수어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뤄져 장애인이 평범한 이웃으로 다가설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유리 기자 kyr@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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