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인 「데미안」 에세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전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라는 문장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입장에 따라 이 문구를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하고 도전의식을 일깨우기도 합니다. ‘알 속 세계’는 딱딱한 껍질로 둘러싸여 있어 안전하고 익숙한 곳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답답한 곳이기도 합니다. 생각을 펼치기 위한 공간이 너무나도 좁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알 밖 세계’는 위험합니다. 생명을 위협받기도하고 비바람이 안락한 삶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선 새롭게 개척할 공간이 펼쳐져 있습니다. 생각을 현실로 이루어내는 곳, 위험하지만 기회가 있는 곳이 바로 알 밖 세계입니다.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기존의 전통과 관습과 사고를 깬다는 것, 즉 기존의 통념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가득 담긴 그릇에는 더 이상 담을 수가 없습니다. 비워져야 채워집니다. 「돈과 인생에 관한 20가지 비밀(마크 스티븐스 저)」에는 영국 왕 에드워드 8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가 평민인 심슨과 사랑에 빠졌을 때, 그녀와 결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왕위를 포기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자신이 아닌 타인들이 만들어 놓은 통념과 전통에 따라 왕위를 지키려면 사랑하는 심슨을 포기해야만 하고, 사랑하는 여인을 택하려면 왕위를 버려야했습니다. 

 고심 끝에 그는 알을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온갖 비난을 감수하면서 왕위를 포기했습니다. 그 이후 사람들에게 그는 찬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알 밖 세상을 개척한 보상일 겁니다. 알을 깨고 나오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익숙한 것을 버려야 하니까요. 딱딱할 대로 딱딱해진 관념과 신념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삶은 늘 ‘불편’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편함’을 느낄 때가 바로 우리가 변화해야 할 시점, 즉 알을 깰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때 우리는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옛날 이야기 하나에서도 그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 중간에서 아들은 누구 편도 들 수 없어 무척이나 난처해 했고, 그래서 어머니와 아내로부터 면박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누가 그러는데 삶은 밤에 꿀을 발라서 먹으면 위가 퉁퉁 붓는다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대." 이 말을 들은 아내는 꿀 바른 밤을 시어머니께 저녁 때마다 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처음에는 의아하게 여겼지만 나중에는 며느리에 대한 미움은 사라지고 오히려 며느리가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어린 손자를 돌보는 시간도 늘어났고, 동네 사람들에게 며느리 욕을 하는 대신에 칭찬으로 일관하게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시어머니의 달라진 모습에 놀라며 며느리를 만날 때마다 그 이야기를 전하며 물었습니다. "요즘 어떻게 해드렸기에 시어머니가 그렇게 달라졌어?"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며느리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급기야 남편에게 고백했습니다. 삶을 밤에 꿀을 발라 시어머니께 드린 사연을 말입니다. 그제야 남편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꿀 바른 밤을 먹었다고 해서 죽긴 왜 죽겠소. 당신이 어머니 때문에 괴로워하기에 내가 장난을 좀 쳤소." 

 남편의 지혜 덕분에 시어머니가 건강해진 것은 물론이고 며느리와의 관계도 복원되었습니다. 며느리 역시 증오심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죄송함과 감사함으로 변해 하루하루의 삶이 행복해졌을 겁니다. 미운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비난하면 할수록 속이 시원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미움’이라는 알 속에 머무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즉 알을 깨고 나와 ‘비난’ 대신 비록 내키지는 않아도 ‘격려와 배려’라는 알 밖 세계의 행동으로 변화될 때 비로소 사랑의 열매가 영글기 시작할 겁니다. 알을 깨고 나온 두려움은 어느 날 벅찬 감격의 기적으로 바뀌어 너와 나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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