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무르익은 가을을 맞아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다녀왔다. 후배의 성화 덕분이었는데, 단풍에 물드는 산하와 아름다운 삼면의 바다는 우리의 행운이다. 모처럼 몸과 마음의 휴식을 구했다. 남녘의 단풍은 더 기다려야겠지만 주말 인파는 한려해상 섬들의 활기를 보탰다. 

높은 가을하늘 아래 한려해상은 호수처럼 잔잔했고 공기는 맑았다. 감탄하는 일행이 사진 촬영에 여념 없을 때, 누군가 ‘인천에서 볼 수 없는 하늘’이라더니 ‘인천에서 볼 수 없는 바다’라고 누차 강조한다. 가을 여행을 마련한 후배의 오랜 친구인 통영시민 한 분이 안내를 자청했는데, 몇 번을 방문한 인천과 분명히 다른 점이 그렇다고 되뇌는 게 아닌가.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통영에서 돌아오자마자 인천 하늘은 누런데. 자리돔 떼가 선착장의 방문객들을 반기는 한려해상의 바다는 맑디맑았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그랬다. 

갯벌이 드넓은 인천은 불투명한 바닷물로 물고기를 숨겨줬지만 적지 않은 해산물을 품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수많은 어패류의 오랜 터전인 갯벌이 매립돼 사라진 이후 인천 앞바다는 빈약해졌다. 바다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민도 사라졌다. 바다보다 매립한 공간에 휘황찬란하게 세운 초고층빌딩을 자랑하는 인천시민은 확실히 통영시민과 달랐다. 하늘도 인천과 한려해상은 다를까? 우리보다 겨울이 빠른 중국은 난방연료 사용을 서두를 텐데, 베이징이 아니라면 석탄을 주로 태운다. 

하늘을 더럽히는 먼지가 편서풍을 타고 인천으로 다가오는 계절이 시작됐다. 아무래도 중국 북부에서 가까운 인천 하늘이 먼저 희뿌옇게 더러워지겠지. 겨울이 깊어지면 비슷해진다. 인구 14만인 통영에 겨울이 짧고 자체 오염원이 적더라도 주민 참여와 성원으로 하늘과 바다가 맑게 보전되기를 기대한다. 얼마 전에 입주한 아파트는 조개잡이로 유명한 곳이었다. 송도신도시가 생기기 훨씬 이전, 물때를 맞춰 맨손어업에 종사하던 인천의 오랜 누이들이 줄지어 갯벌을 들고 나던 육지의 끄트머리였지만 최근 아파트단지로 번듯해졌다. 시할머니와 갯일에 나서던 열일곱 아낙의 애환이 담긴 갯벌은 시방 휘황찬란하다. 휘황찬란한 송도신도시와 신축 아파트 단지 사이는 테마파크를 앞세운 넓은 공터가 풀밭이 된 채 시야를 열어준다. 거실에서 훤히 보이는 그곳의 하늘은 인천의 먼지 상태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오늘 아침, 희뿌연 하늘을 매캐하게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데, 바람길을 내고 미세먼지를 차단할 ‘그린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인천시장의 약속이 보였다. 나중에 찬찬히 읽으려 펼쳐둔 신문지면이었다. 시민이 생활하는 공간에 도시숲을 확충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오래 공원 조성을 미루다 땅주인에게 귀속돼 난개발이 우려되는 지역, 장기 미집행 공원구역부터 서두르겠다는 내용을 보도한 신문은 도시숲은 미세먼지를 25.6%, 초미세먼지는 40.9% 줄이고 자동차 소음은 75%, 트럭 소음은 80% 감소시킨다는 산림청의 자료를 덧붙였다. 

바람길은 자동차 분진과 소음을 줄이고 도시열섬화를 식히는 존재라는 거, 독일 슈투트가르트가 증명해왔다. 세계 많은 도시가 바람길을 조성하는 건 시민의 요구가 크기 때문인데, 대다수 인천시민은 바람길을 모른다. 미세먼지가 유별난 인천이므로 바람길이 요긴한데, 어떻게 시민의 기대를 모아야 할까? 

국가도 어려워하는 중국의 먼지보다 영흥도 화력발전소에서 막대하게 토해내는 미세먼지 대책은 미룰 수 없는데, 시민 관심이 부족한 인천에서 가을하늘은 희뿌옇게 열린다. 거주공간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시민은 시정책에 별 관심이 없다. 먼지로 뒤덮이는 인천을 빠져나가려는 시민이라면 직장이나 교외로 빠르게 연결하는 도로를 요구할 따름이겠지. 

사실 인천시는 바람길과 도시숲을 몇 차례 벼려왔고 시행했지만 시민들은 그 존재와 성과를 기억하지 못한다. 시민 참여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정책은 선언에서 그치지 않아야 한다. 시민이 성원하는 결과를 기대하려면 기획에서 예상 결과까지 능동적인 시민과 투명하게 논의하며 정책을 만들어 시행해야 바람직하다. 인천시민도 가을을 자랑스레 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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