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창민 수원중부서 수사지원팀 경위
곽창민 수원중부서 수사지원팀 경위

조선의 최대 스캔들로 인구에 회자되는 사건이 있다. 바로 양녕대군과 어리의 스캔들이다. 당시 세자 양녕대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용해 조선 제일의 미모인 어리를 강제로 탐한 사건이다.

사대부인 곽선의 첩이었던 어리는 양녕대군을 피해 곽선의 양자인 이승의 집으로 도망쳤지만, 양녕대군은 집까지 쫓아가 어리를 강제로 데려간 것이다. 이때 이승이 양녕대군에게 항의를 하자 "내가 한 일을 어디에다 고발할 것이냐?"라며 비웃었다 한다.

지금 우리의 사법시스템이 그렇다. 검찰이 직접수사권,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그리고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검찰이 잘못하면 어디에 고발할 수 있을까?"

얼마 전 경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한 임은정 검사는 "사문서위조나 자기소개서는 압수수색하면서 중대범죄인 공문서위조는 압수영장 신청을 기각하는 이중 잣대를 보였다. 검찰이 조직을 보호하는데 수사지휘권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라고 지적하며 "국민들이 검찰권 오남용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조선시대에는 권력의 집중을 견제하는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라는 기관이 있었다.

이중 사헌부가 지금의 검찰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했는데, 수사권은 사헌부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형조나 의금부, 포도청에도 수사권이 있어 사헌부에서 봐주기 식 수사를 하는 정황이 발견되면 곧바로 사간원에서 탄핵을 했고, 곧이어 의금부나 형조가 재수사에 나섰다. 따라서 어느 한 기관이 권력을 독점할 수 없었고, 설사 왕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권한을 휘두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양녕대군도 결국에는 폐세자로 전락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검찰의 셀프수사에 대해서는 검찰을 견제할 기관이 없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된 계기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제도이다. 일본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회통제에 초점을 맞춘 형사사법 체계가 형성됐고, 일제 검찰은 조선형사령을 통해 독자적 강제수사권 확대, 통제받지 않는 소추권, 수사절차 장악, 조서에 의한 공판장악을 통해 형사절차 전반을 지배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검찰 중심의 사법제도가 군사정권 시대를 지나면서 더욱 강화돼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무소불위 검찰을 만든 것이다.

이제는 검찰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해 더 이상 사법권 남용으로 인한 피해가 없어야 할 것이며, 검찰개혁 출발점인 ‘수사구조개혁’ 의 결과물을 내놓아서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할 때이다.

철저한 권한 분산으로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룬 형사사법 제도의 뒷받침으로 조선이 500년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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