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수문통.
과거 수문통.

물은 높은 곳에 시선을 두지 않는다. 물은 늘 낮은 곳에 행적을 둔다. 물은 제 물과 네 물로 갈라 놓지 않는다. 서로 부대끼며 섞여서 더 큼을 이룬다. 물은 다투지 않는다. 바위를 만나면 비켜 돌아가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물의 웅덩이에 비록 제 몸을 더럽힐지라도 그냥 건너뛰는 법이 없다. 그렇게 한 점, 한 점의 물방울이 모여 대양(大洋)을 이룬다. 가장 아래에 있는 바다는 가장 위의 하늘빛을 품어 푸르다.

인천시와 인천하천살리기추진단이 옛 물길을 찾아서 되살리기에 나섰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물의 본형을 살려서 높은 뜻을 기리자는 뜻에서다. 그 한가운데에 낮은 자들의 삶의 정한(情恨)이 흐르는 ‘수문통((水門通)’이 있다.

지금은 콘크리트에 덮여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없지만 동구 화수부두에서 송현동을 거쳐 배다리에 닿는 물길이 있다. 그 중 화평치안센터와 송현치안센터 사이 200m 갯골수로가 수문통이다.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수문통서 나고 자란 유동현(61)인천시립박물관장이 더듬어 내는 그곳에 대한 기억은 하염없는 애달픔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아픔이 배어 있는 현장이라는 얘기다. 

1904년 갑신정변 이후 일본군이 개항장 주변에 주둔하면서 주민들을 내쫓았다. 내몰림 당한 조선인들이 새 삶의 터전으로 삼은 곳이 수문통이다. 수문통은 조선시대 갯골에 수구문(水口門)이 설치돼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1930년대까지 바닷물이 들고나 해산물과 생필품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가 오갔다.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에 일본인 요시다 히데지로(吉田秀次郞)가 하수도와 수문을 만드는 바람에 나룻배가 끊겼다. 1989년과 1994~1996년 두 차례 매립의 삽날이 더해졌다. ‘수문통로’라는 신작로가 생겼다. 화평치안센터 앞에 수문통을 건너던 흔적이 ‘송현교 표지석’으로 남아 있다.

지대가 낮아 인근 생활하수가 수문통에 모여들었다. 종종 탯줄이나 사산아(死産兒)를 싼 시멘트 봉지가 둥둥 떠다니기도 했다. 여름철이면 악취가 코를 찌르는 ‘똥바다’였다. 그래도 동네 사람들은 이 수문통을 ‘센강’이라고 불렀다. 그들에게 없이 살았어도 낭만을 버리지 않았던 애절함이 있었다.

화평동 쪽 수문통 끝자락에는 한동안 수상가옥이 있었다. 갯골을 일부 복개한 곳 위에 판잣집들이 들어선 것이었다. 안방 밑으로 바닷물이 찰랑거렸다. 1962년 9월 1일 이곳에 수문통 시장이 문을 열었다. 슬레이트 지붕에 판자벽을 한 이 시장의 건물은 1층은 가게이고 2층은 살림집인 일종의 주상복합이었다.

시장이라고는 했지만 화평동 쪽 입구에 순댓집과 그 반대편 입구에 과일가게 몇 집만 장사를 하는 초라한 장터였다. 결국 대부분 주거지로 사용됐다. 대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아 통로는 늘 어두침침했다. 하루에 두 번씩 바닷물이 드나들어 방바닥에 누우면 물결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수문통은 주거환경 개선과 악취의 등살에 떠밀려 1996년 나머지 부분도 복개됐다. 수상가옥도 철거됐다. 적잖은 예산이 뒤따르는 생활하수와 오폐수 등의 처리시설을 통한 환경개선사업을 외면했다. 대신 비용을 적게 들이는 복개공사를 밀어붙였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시대적 요구를 받들지 못한 개발의 역행이었다. 현재 도로와 주차장으로 쓰고 있다. 

콘크리트로 덮인 수문통은 갯골수로가 아니라 하수도로 전락했다. 갯골의 생명력을 잃은 지 오래다. 수질 악화와 악취로 복개되지 않은 지역이나 연안까지 그 폐해의 폭과 길이를 넓혀 가고 있다. 화수부두는 개펄이 섞어 악취를 풍기고, 좀 더 떨어져 있는 만석부두의 해양수질은 3등급(보통)이 될까 말까다. 밀물 때는 바닷물과 섞인 생활오수가 가좌하수처리장으로 흘러들어 처리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수문통 수상가옥.
수문통 수상가옥.

인천하천살리기추진단은 수문통 옛 물길 복원을 추진 중이다. 화평치안센터에서 동국제강에 이르는 220m 구간이다. 콘크리트 덮개를 뜯어내서 맑은 물을 흘려 갯골수로의 생태계를 회복시키자는 것이다.

하천살리기추진단은 수문통 복원사업 타당성 용역에 반영하기 위해 시민 의견을 듣고 있다. 수문통 물길 공감 투어를 하며 선상토론회를 열었다.

사업 추진의 당위성이 나왔다. 박상문 지역문화네트워크 공동대표는 토론회에서 바다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바다를 잇대서 인천의 가치를 재창조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인천 해안의 많은 곳이 매립됐고, 이곳에 공장 등 산업시설과 군사시설이 들어서면서 시민들이 바다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얘기였다. 수문통의 옛 물길 복원으로 역사성과 친수성을 되찾아 도심 기능을 활성화하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기 위해선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혜자 인천하천살리기추진단 사무국장은 물길 복원으로 원도심에 힘을 실어 주자고 제안한다. 동구는 볼거리나 즐길거리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물길을 복원하면 관광 효과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견해다. 최 국장 역시 전제는 주민들의 의지를 꼽고 있다.

현재 수문통의 모습.
현재 수문통의 모습.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주차장 확보와 유지용수 관리 문제, 재원 확보 문제 등이다. 수문통로 복원에 따르는 주민들의 우려는 왕복 2차로 도로와 186면의 노상주차장의 사라짐이다. 교통 혼잡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인근에서 진행 중인 화수화평주택재개발구역과 공원, 동인천역 북광장 지하 등 공유지 활용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곳에 310대의 주차면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수문통의 유지용수는 하수처리시설 방류수와 재이용수를 활용하자는 방안이 나왔다.

재원 확보도 관심거리 중 하나다. 수문통 복원사업비는 총 37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생태하천 복원사업은 내년부터 지방이양사업으로 바뀐다. 이럴 경우 국비를 지원받을 수 없게 된다. 인천시 스스로 돈을 마련해야 한다. 되찾은 갯골 수문통에서 칠게가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박정환 기자 hi21@kihoilbo.co.kr

사진= <인천 동구 제공>

<인천하천살리기추진단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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