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시조시인
김락기 시조시인

우리 국민의 대부분은 서민 또는 평민으로서 상식 속에 산다. 일상의 희로애락 속에 글줄이라도 쓰면서 그때그때 자그만 성취에 족히 지내는 나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쉬이 다양한 외국인들을 접하면서 이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음을 내심 자부했다. 하나, 지난 8월 이후 조국 장관 임면(조국 가족 사태)으로 인한 작금의 혼란한 사회 상황은 삶을 송두리째 되돌아보게 했다. 가치관이 흔들렸다. 내 자식 교육이나 지나온 인생 여정이 오버랩되면서 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혼돈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었다. 이상한 나라의 요지경 세상이다. 후안무치, 정신이상, 확증편향, 선택적 회피, 우월의 착각 등등 심리학이나 정신병리학 용어들이 난무했다.

의혹으로부터 시작된 심리상태는 점점 울분으로 변해갔다. 급기야 10월에는 광화문 광장으로 울화통이 터져버렸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 따위는 아랑곳없다. 바로 옆에 부딪치는 거대한 인파는 성난 평민들의 함성이었다. 참다 못해 일시에 쏟아진 상식과 공정의 불길은 반칙과 불의를 훨훨 태워버리는 들불로 번졌다. 온갖 학교 동창회 깃발, 손 팻말 같은 수많은 선전물들은 독선과 불평등을 뒤덮고도 남았다. 발을 옮기기도 비좁은 틈바구니에 아무렇게나 뒤엉긴 것 같은 군중들의 엄청난 규탄의 메아리는 뇌리를 타고 내려 가슴을 퉁퉁 울렸다. 인산인해, 아마도 경복궁이 놀라 자빠질 뻔했을지 모른다. 

자칭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로 생겼다는 문재인 정권이 같은 장소에서 때만 달리해 규탄 부메랑을 맞는 상황이었다. 온 나라가 앓는다. 서초동 집회에도 나가 보았다. 당시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을 외치는 소리는 공허했다. 두 테제는 서로 선뜻 연결이 되지 않았다. 과연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다수 평민들에게 검찰 개혁이 그리 시급하게 와 닿을까. ‘개혁’은 제도 개선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제도의 운영에 있다. 운영하는 주체는 사람이다.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악용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 개혁의 열쇠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독립성이 그것이다.

평민들에게 시급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다. 먼먼 옛날부터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해야 예절을 안다고 했다. 정치는 있는 듯 없는 듯 물 흐르듯 해 국민들의 결기를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서민이 정치에 무관심해질 때 되레 편안하다는 증거다. 선정(善政)은 활기찬 경제와 튼실한 안보가 핵심이다. 올 예상 경제성장률이 1%대로 추락한다는 설까지 나오고, 북한의 수차례 미사일 도발에도 제대로 따끔한 대응 한번 없었다. 이런데다 조국 가족 사태에 대한 일부 작가들의 해괴한 말솜씨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그저 먹먹했다. 5G 시대, 문해율 100%에 육박하는 이 땅에서 그런 말들을 거리낌 없이 하는 모습에서 어떤 이는 진보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했다. 이 편이든 저 편이든 거짓은 거짓이라고 하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어찌 제 편이면 거짓을 참이라고 하는지 이 지점에서 나는 또 혼돈에 휩싸였다. 표현의 옳고 그름에 책임껏 임하지 않는 작가가 있을까. 작가도 착오가 있을 수 있지만 의도된 거짓이 더 문제다.

뻔한 사실을 굳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흔히 궤변이라고 한다. 혹세무민하니 참 나쁘다. ‘궤변가’, 즉 ‘소피스트’라는 그리스어의 의미를 이번에 피부로 정히 느꼈다. 기원 전 5세기 무렵 아테네 광장에는 출세를 꿈꾸는 이들의 웅변이 잦았다. 이들 중 자기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계속 옳다고 주장한 이들이 있었다. 예컨대 트라시마코스는 "불의한 자의 삶이 올바른 사람의 삶보다 낫다"고 했다. 억지 논리로 자기주장을 합리화한 이유는 그로 인해 얻는 이익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작금의 이러한 일부 작가들이 왜 그토록 궤변에 몸부림치는지 헤아리게 됐다. 자기들만의 편향된 집단 신념으로 사는 그룹을 연상하면 안타깝다. 

자유는 인간의 생래적 권리다. 서로 견해가 다를 수 있고 그리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조국 가족 사태에서 나타난 특권층의 위선과 몰상식·불공정한 혐의점들을 보다 못한 서민들은 거센 노도의 물결로 온통 광장을 메우고 말았다. 나라의 못둑이 새기 시작했다.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태평양 같이 무던히 편재하는 상식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상식의 종언을 고해야 할지도 모른다. 상식 되세우기를 통해 서민이 편히 사는 나라로 살아나야 한다. 시조로 비손한다.

- 광장은 절규한다 -

 이내 몸은 서민이요
 자유 상식의 피돌기라
 
 편안할손 애국 애민
 세종 상과 충무 같이
 
 목메어
 부르짖는 함성
 저 하늘도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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