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더께 걷어내면 정겨웠던 실개천 돌아올까
상태바
회색빛 더께 걷어내면 정겨웠던 실개천 돌아올까
2. 굴포천 부활 - 부평구 친수공간 복원 계획-
  • 박정환 기자
  • 승인 2019.11.01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6년 복개 공사 중인 굴포천.
1996년 복개 공사 중인 굴포천.

"(백인)당신들은 어떻게 하늘을, 땅의 체온을 사고팔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땅을 팔지 않겠다면 당신들은 총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러나 신선한 공기와 빛나는 물은 마땅히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갓난아이가 어머니의 심장 고동 소리를 사랑하듯 우리는 땅을 사랑합니다."

1885년 백인들의 대포 앞에 칼과 활로 맞섰던, 끝내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아메리카의 한 인디언이 미국 정부에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모든 것을 사유(私有)와 매매(賣買), 소비(消費)의 대상으로 몰아붙이는 백인 문명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편지에 새겼다.

"땅으로부터 자기들이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가져가 버리는 당신들 역시 이 땅의 이방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건설한 도시의 모습은 우리 인디언의 눈을 아프게 합니다." 자연을 적대적인 것으로, 불편한 것으로, 또는 미개한 것으로 내모는 백인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통쾌한 일침이었다.

인간 생활로부터 자연을 차단해 온 성과가 문명의 내용이 될 수 없다는 맹렬한 각성과 더불어 자연으로부터 떨어진 거리에서 문명의 척도를 찾는 ‘도시의 물리(物理)’에 대한 혼신의 거부였다. 콘크리트 벽 틈에서 없어도 되는 물건을 생산하느라 넋을 잃고 마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갈증의 확대생산에 애끓이는, 그래서 생산할수록 빈곤을 느끼게 하는 ‘문명의 역리(逆理)’에 대한 청량한 고발이었다.

"당신들의 모든 힘과 능력과 정성을 기울여 당신들의 자녀를 위해 땅을 보존하고, 또 신이 우리를 사랑하듯 그 땅을 사랑해 주십시오. 비록 백인들일지라도 공동의 운명으로부터 제외될 수 없습니다." 그 인디언은 문명과 야만의 의미를 다시 고민케 하고 편지를 마친다.

그 고민은 콘크리트로 차단된 인천시 부평구 굴포천 물길에서 환생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굴포천에서 우리의 것을 잃고, 버리고, 외면해 왔다. 보편적인 원리로 수긍한 서구적인 것에 우리의 것을 구석진 곳에 구겨 박았던 사고(思考)의 식민성(植民性)이 아직도 굴포천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옛 물길 복원 예정 지역.
옛 물길 복원 예정 지역.

굴포천 변화의 흔적들은 부평의 도시화의 궤적과 같이 한다. 부평의 들뜬 도시화는 1899년 굴포천과 이웃해 지나간 경인철도 부평역이 생기면서부터다. 일제강점기 부평역 인근에 들어선 일본 육군 조병창과 지금의 부평공원(부평2동)에 있었던 미츠비시제강주식회사 등 관련 공장들은 과거의 부평을 한순간에 바꿔 놓았다.

1930년대 후반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군수산업시설은 일자리를 찾아나선 전국 각지의 굶주린 자들을 부평으로 끌어당겼다. 신도시 부평에 ‘새마을(新村·부평2동)’이 잉태하기 시작했다. 논밭을 메운 줄사택이라는 벌집과 같은 근대식 주거양식으로 자리잡았다.

광복 후 터 잡은 미군은 일본인들이 두고 간 시설들을 고스란히 접수했다. ‘애스컴 시티(ASCOM CITY)’ 미군부대 중심의 도시를 건설했다. ‘기지촌’으로 불렸던 또 다른 ‘신촌(부평3동)’이었다. 재즈를 대중화했던 음악클럽과 홍등가도 덩달아 터를 잡았다.

1970년대 초 미군 철수와 부대 이전 전까지 신촌은 군무원 주거공간과 미장원, 미군PX물품 판매점, 양행, 목욕탕, 신발가게, 약국 등 상업시설이 뒤엉켜 흥청거렸다. 술과 노래,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흐르는 수도권 최대 외래 물산 유통 상권이었다.

1980년대 이후 예전의 흔적을 밀어내고 아파트 건설 바람이 거셌다. 미군 부대가 떠난 자리에 현대건설이 인구 5만 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세우면서 신촌의 옛 모습은 사라졌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1984년 11월 20일 경인전철 백운역 건립의 계기로 작동했다. 아낙들이 빨래하고, 아이들이 물장구치던 굴포천도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

부평2동 ‘앞산’ 칠성약수터에서 발원해 신촌 앞으로 지나던 굴포천 물줄기 중 인천가족공원에서 부평구청 앞까지 3.46㎞가 콘크리트로 덮였다. 판개((掘浦) 위로 떠서 가로질렀던 다리도 사라졌다. 

일제강점기 후반 이후 신촌을 지나 조병창을 따라 흘렀던 굴포천의 ‘자연성’을 ‘도시성’으로 색깔을 바꿔 입혔다. 광복 이후에도 굴포천은 외국 군 주둔지와 한국인의 거주공간의 경계선 노릇을 했다. 가난했던 시절 궁핍의 설움을 씻겨 줬던 굴포천이 콘크리트에 묻힌 것이다. 문명의 이기가 담긴 자동차를 위한 터로 굴포 복개천을 내줬다.

갇힌 굴포천이 생태하천으로, 우리의 생활 속 공간으로 열린다. 부평구가 굴포천 소하천 정비 종합계획을 세웠다. 전문가와 신촌 일대 주민들의 의견도 들었다.

부평1동 행정복지센터부터 부평구청 인근까지 총연장 1.56㎞ 콘크리트 덮개를 걷어내고 옛 물길 찾기 사업을 벌인다. 그 중 소하천 복원 사업구간은 1.2㎞이다. 

1950년대 굴포천서 빨래하는 모습.
1950년대 굴포천서 빨래하는 모습.

구는 굴포천 옛 물길을 다시 살려 도심 내 친수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굴포천 복원사업은 문화와 경제 활성화 등 원도심 재생 촉진 사업의 핵심이다. 2022년 준공을 목표로 국비 55억 원과 구·시비 581억 원 등 총 636억 원을 들인다. 

구는 내년 초까지 소하천 정비 종합계획 수립과 고시를 마무리한다. 상반기까지 설계 관련 여러 심의를 거쳐 설계를 마친 뒤 하반기 공사를 발주할 계획이다.

복개구간 철거 시 주민들의 주차 불편이 예상된다. 구는 시간을 두고 2021년부터 단계별로 기존 주차장을 철거할 예정이다. 가까운 서부동 놀이공원 터를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쪽도 고민 중이다.

내년 상반기 마무리할 ‘부평구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따른 교통소통대책 수립 용역’에서 진행 중인 주차시설 이용실태 조사 등을 통해 주차 문제 대안 분석과 개선책을 내놓겠다는 구상이다.

구는 굴포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통해 주민 이용 편의성과 쾌적한 하천 환경을 조성하고 주민들의 주차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2022년 굴포천의 흙내와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향기는 어떨지 궁금하다. 

박정환 기자 hi21@kihoilbo.co.kr 

사진=<부평구 제공>

<인천시하천살리기추진단 공동기획>

기호일보, KIHOILBO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