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가수의 공연장이나 운동경기장에서 열정적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한국인의 떼창 문화는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떼창(singalong)’이란 말은 우리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말이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큰 무리가 같은 노래를 동시에 부르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행동을 같이하는 무리를 뜻하는 ‘떼’와 노래하는 것을 의미하는 한자 ‘창(唱)’의 합성어(合成語)이기도 하다. 

수년 전 이미 월드 스타로 이름을 올린 가수 싸이의 광장 콘서트에서 수만 관중이 ‘강남 스타일’을 함께 따라 부르며 말춤을 추던 놀라운 광경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른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떼창은 가수와 청중을 확실히 하나로 만드는 마력(魔力)을 지녔다. 일순간에 각본에도 없는 놀라운 하모니가 연출되는 것이다.

각종 스포츠 경기장에서는 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화려한 안무(按舞)를 자랑하는 치어리더와 양쪽 진영의 열띤 응원전도 빼놓을 수 없는 흥미 거리다. 특히 응원전에서 터져 나오는 신나는 떼창을 함께하다 보면 어느 새 수천 수만 관중이 하나가 되는 최고의 순간을 경험하곤 한다.

‘노래로 독립을 이룬 나라’, 에스토니아라고 하는 나라가 있다. 지도를 보면 북유럽에 있는데, 북쪽과 서쪽은 발트해, 동쪽은 러시아, 남쪽은 라트비아와 닿아 있는 나라로 1940년 소련에 편입됐다가 1991년 독립했다.

수도는 탈린이고 정식 명칭은 에스토니아공화국이다. 그 나라의 환경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자료에 의하면 빙하작용 영향으로 토지는 낮고 평평하다고 한다. 기후는 습윤(濕潤)하며 삼림과 습지, 그리고 목초지가 매우 넓은 나라라고 한다. 

에스토니아는 소련이 무너지기 전인 1988년, 약 30만 명의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서 소련 통치를 거부하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당시 소련은 경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서 에스토니아의 떼창 시위를 진압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1991년에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이뤄내기까지 에스토니아는 시민들의 대규모 떼창과 함께 비폭력 독립운동으로 일관했고, 그 결과가 드디어는 소련을 해체시키는 기반이 됐다고 한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의 노래 사랑 역사는 꽤 깊다. 수도 탈린에서는 1869년부터 5년에 한 번씩 송 페스티벌(Estonian Song Festival)이 개최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떼창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인구 40만의 작은 도시에서 3만여 명이 모여 떼창을 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일 것이다.

전 국민이 자연스럽게 한마음이 되어 화합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상상만 해봐도 가슴이 벅차오를 일이다.

에스토니아 국민이라면 세계 최대 규모의 송 페스티벌 무대에 한 번쯤 서 보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하니 이 나라 국민의 삶속에는 노래가 늘 함께하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우리도 에스토니아 사람들 못지않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노래를 즐기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연습을 하는 합창단이 이미 전국적으로 1천여 개 정도가 활동하고 있고, 매년 연례 행사처럼 합창 축제를 여는 곳도 여럿 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일반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아 참여하기도 쉽지 않고, 행사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 아쉬움이 크다. 

떼창은 수많은 군중이 같은 노래를 동시에 부르지만, 합창은 노래하는 사람들이 여러 패로 나눠 각기 다른 가락을 부르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떼창이나 합창 모두가 여럿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적 활동이라는 특성이 있고, 참여하는 사람 개인의 감정 표현이나 음악적 능력보다는 전체의 조화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데는 다른 어떤 음악보다 그 효과가 크다.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는 한국인의 떼창 문화를 이어가려면 기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00구 합창단원 모집’이란 현수막을 내걸고 소수의 단원을 모아 활동하는 정도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지자체는 관련 예산을 확보하고 그 지역의 모든 학교와 손을 잡기 바란다. 그리고 유능한 합창지도자를 초빙하거나, 지역 종교단체의 합창지휘자에게 도움을 청해도 좋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연습 장소와 피아노를 제공하면 된다. 에스토니아 정도는 아니더라도 전국 곳곳에서 아름답고 경쾌한 노래소리를 늘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몇 년에 한 번씩은 광장이나 공설운동장과 같이 넓은 곳에서 수만의 시민들이 ‘떼창’으로 마음을 모아가는 감격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처럼 마음이 답답할 때는 노래가 약(藥)이다. "누구나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어, 그럴 땐 나처럼 노래를 불러봐, 쿵따리 샤바라 빠 빠 빠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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