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수식하는 단어나 문구 중 반갑지 않은 표현이 등장했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곡식은 풍성하게 익어간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을 대신해 ‘가을 불청객 미세먼지’, ‘미세먼지 시즌’이라는 용어가 일상화되고 있다. 실제로도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는 일이 드물어졌다. 곱게 물든 단풍 사이에 끼어든 뿌연 공기는 모처럼 즐기는 나들이의 흥을 깨고 건강도 위협한다. 미세먼지는 석탄, 석유 등의 화석연료를 태울 때나 공장, 자동차 등의 배출가스에서 많이 발생한다. 때문에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면 차량2부제나 노후 차량의 운행이 제한하기도 한다. 2016년 개봉된 영화 ‘나이스 가이즈’는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대기오염 문제를 작품 저변에 깔고 있는 블랙코미디물이다.

1977년 미국 L.A. 배신과 음모, 부패가 넘쳐나는 타락한 세상에서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청부폭력탐정 잭슨은 아멜리아라는 의뢰인에게서 자신을 미행하는 사람을 손봐 달라는 청탁을 받게 된다. 불도저 같은 잭슨은 스토커로 추정되는 홀랜드를 찾아내자마자 주먹을 날린다. 그러나 코피를 흘리는 홀랜드도 사립탐정이었다. 한 덩치 하는 잭슨과는 달리 호리호리한 체격의 그는 특유의 촉과 센스를 발휘해 사건을 해결하되 사기꾼적인 입담으로 수수료를 많이 챙겨 왔다. 

유쾌하지는 않은 첫 만남이었지만 두 사람은 최근 발생한 의문의 사건들이 아멜리아와 연관돼 있음을 파악하고 협력하게 된다. 홀연히 사라진 아멜리아, 실종된 아멜리아를 딸이라 주장하는 L.A 법무국장, 아멜리아가 주도한 환경운동과 수상한 포르노 비디오 및 영화 스태프들의 미스터리한 죽음 등 그녀는 모든 사건과 연결돼 있었다. 실종된 아밀리아를 추적할수록 두 탐정은 뜻밖에도 자동차산업의 검은 비밀에 다가서게 된다.

점증하는 사건과 폭력성의 핵심에는 비열한 인간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팽팽한 긴장감과 어두운 분위기는 누아르 영화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영화 ‘나이스 가이즈’는 필름누아르를 변주한 작품으로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정의를 구현하려는 맥락은 살리되 심각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걷어냈다. 진지함 대신 짓궂은 조롱과 화려한 입담으로 웃음을 끌어냈고, 찰떡 호흡을 보여 준 배우 러셀 크로우와 라이언 고슬링의 몸 사리지 않은 액션은 보는 재미를 극대화했다. 

그러나 웃고 즐기는 사이 세계의 모순과 부조리 또한 냉소적으로 드러난다. 쉴 틈 없는 빠른 전개 속에 얽히고설킨 스토리를 따라 가다 보면 사건의 원인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자동차산업 활성화를 위해 심각한 대기오염에 불구하고 법무부가 뒷돈을 받고 사실을 은폐하는 과정에서 의문의 실종과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영화 ‘나이스 가이즈’는 2015년 드러난 ‘디젤게이트’를 소재로 삼고 있다. 아우디폭스바겐은 자사의 디젤 엔진에서 기준치의 40배가 넘는 배기가스가 발생된다는 사실을 숨긴 채 제품을 판매했고, 이후 업계와 독일 정계 간 추악한 유착 정황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더한 바 있다. 영화 ‘나이스 가이즈’는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연속으로 터지는 풍자적 유머를 통해 쓴웃음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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