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大韓義士)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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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大韓義士) 이재명
정겸 시인/경기시인협회 이사
  • 기호일보
  • 승인 2019.11.08
  •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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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겸 시인
정겸 시인

지난 주말 모처럼 시간을 내어 창덕궁과 창경궁 등 고궁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청계천을 건너 독립운동과 민주화의 성지 명동성당 가는 길목을 밟아 봤다. 늦가을 서울의 거리는 600년 도읍지답게 앤티크하다. 을지로입구역을 빠져나와 걸어가는 동안 1892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의열단으로 활동 중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파에 실패, 1926년 순국한 독립투사 나석주 의사 동상을 만났다. 

현재는 하나은행이 자리 잡고 있지만 과거 그곳은 일제강점기 수탈과 착취를 일삼았던 동양척식회사가 있었던 터였다. 동상이 위치한 자리가 음습하고 취객들이 빈번한 곳이어서 왠지 경건하지 못하고 독립투사에 대한 예우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쉽지만 뒤로 하고 명동성당을 향하니 정문 못 미쳐 모퉁이에 ‘이재명 의사 의거 터’라는 작은 표지석을 만났다. 순간, 박상우 작가의 소설 「칼」이 생각났다. 칼의 용도는 양면의 역할을 하고 있어 정의와 불의가 함께 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의 칼의 존재는 분명 정의로운 칼이다. 아니 영웅의 칼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의미하는 칼의 탄생은 "1909년 12월 15일 밤,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라고 썼다. 이어서 "내가 태어난 장소는 청계천 수표교 근처의 한 대장간이었다"라고 했다. 독백조 형식의 일인칭 소설로 전개되는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는 칼은 바로 꽃다운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청년 의사(義士) 이재명(李在明)인 것이다.

지금부터 110년 전, 대한의사(大韓義士) 이재명의 일제(日帝)를 향한 당당한 외침은 어디로 가고, 매국노를 향한 정의 칼은 왜 부러져서 이렇게 초라한 표지석으로 남아 있는지 서글픈 마음이 든다. 이재명은 격랑의 시대였던 개화기 즈음인 1887년 10월, 평양에서 태어나 미국 감리교 선교사들이 설립한 일신학교(日新學校)를 다녔다. 1905년 미국 노동이민회사의 이민 모집에 의해 하와이로 건너가 농부로 일하던 중 공립협회의 임치정·이교담 등을 만나 친분을 쌓았으며 이듬해 미국 본토로 건너가 한인의 독립운동단체인 공립협회에 가입했다. 

공립협회는 1905년 안창호 등이 창립한 항일단체로 국권회복운동에 적극적이었으며, 1907년부터 독립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통일연합기관으로의 세력을 점차 확장해 나가는 단체였다. 

당시 우리나라 정세는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해 1907년 6월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고종황제를 퇴위시키고, 정미조약의 강제 체결과 대한제국의 군대까지 해산시켰다. 

이와 관련해 공립협회 지도부에서는 일제에 적극 협력하는 매국노들의 숙청을 결의했으며  이재명 역시 매국노들의 처단 계획에 자원했다. 이재명의 매국노들에 대한 처단 각오는 남달랐다. 친일 매국노 즉 을사오적인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등을 먼저 없애는 것이 국권수호의 첩경이라 생각하고, 여러 동지와 야학당에 모여 이완용은 이재명이 처단하기로 계획했다. 

1909년, 이재명은 이완용 등 매국노들이 12월 22일 서울 종현천주교회당(현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신문 보도에서 접한 후 군밤장수로 위장한 뒤 식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오전 11시 30분께 이완용이 식장에서 나와 인력거를 타고 지나가려는 것을 칼로 허리와 어깨 등을 세 번이나 찔러 쓰러뜨리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일본경찰한테 왼쪽 넓적다리를 찔려 중상을 입고 잡혔다. 그는 그렇게 미완의 영웅이 됐다. 

대한제국의 의사 이재명은 법정에서도 당당했으며 재판장에게 간담이 서늘해지는 서릿발 같은 말을 남겼다. 재판장이 피고의 행한 일에 찬성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냐 묻자 "이천만 민족이다"라고 서슴없이 답을 했으며 "왜법(倭法)이 불공평해 나의 생명은 빼앗지만 나의 충혼(忠魂)은 빼앗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나를 교수형에 처한다면 나는 죽게 되지만 다시 이재명으로 환생해 너희 일본을 망하게 할 것이다"라며 일침을 가했다. 결국 대한의사 이재명은 부활의 신념을 갖고 1910년 9월 30일 24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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