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세상을 떠날 즈음에서야 깨닫는 것들 중의 하나는 자신이 그토록 ‘열심히’ 추구하며 살았던 삶이 가짜의 삶이었다는 점입니다. 젊었을 때 그토록 바빴던 삶이 사실은 ‘가짜’였고, 그래서 지금이라도 ‘진짜’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정작 그럴 수 있는 시간과 건강이 따라주지 않더라는 후회일 겁니다. 그러니 건강할 때 그리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자신의 ‘진짜’ 삶을 발견하고 그 삶에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 삶일까요?

「언어의 온도」라는 책에 소개된 위폐 감별사가 말한 위폐감별법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너무 화려하면 일단 수상한 지폐로 분류합니다. 위폐는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꾸민 흔적이 역력합니다. 그래서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가짜는 필요 이상으로 화려합니다. 진짜는 그렇지 않아요. 무척 자연스럽지요. 억지로 꾸밀 필요가 없으니까요."

‘화려하다’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환호와 박수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 자신의 진짜 모습 때문이 아니라 포장된 가짜 모습을 보고 환호와 박수를 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들의 환호와 지지가 철회되는 순간 발생합니다. 좌절감과 절망감으로 삶의 의욕을 아예 잃어버립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가짜를 진짜로 여기고 산 형벌인지도 모릅니다.

인터넷에 찾은 아래의 예화가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부부가 숱한 고생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260여 ㎡의 멋진 주상복합아파트를 장만했습니다.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어가며 온갖 고생 끝에 장만한 아파트입니다. 거기다 최첨단 오디오세트와 커피머신을 사서 베란다를 테라스 카페처럼 멋지게 꾸몄습니다. 이제 행복할 것 같았지만 사실 부부는 이 시설을 즐길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회사에 출근한 후 집에 무엇을 놓고 온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것을 가지러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가정부가 최첨단 오디오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하고 있고,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시며 베란다의 테라스 카페에서 쉬고 있는 게 아닌가요?’

누가 그 집의 주인일까요? 부부일까요, 아니면 가정부일까요? 부부는 허겁지겁 출근해서 바쁘게 일하고 다시 허둥지둥 집에 들어와 잠자는 것이 고작이어서 자신들이 장만한 멋진 시설을 즐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부부의 삶이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더 넓은 아파트 평수, 더 좋은 오디오, 더 멋진 테라스 카페, 더 근사한 커피머신을 사기 위해 밤낮으로 일했지만, 그렇게 고생해서 마련한 그것들을 정작 한 번도 즐기지 못하는 것이 행복한 삶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짜의 삶은 ‘돈’, ‘권력’, ‘명예’를 추구하는 삶, 그것들을 목적으로 삼는 삶, 그것을 갖는 것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여기고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런 삶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아귀(餓鬼)와도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지옥을 여행하면서 만난 아귀들은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먹으면 먹을수록 배가 더 고파지는 고통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을 ‘아귀의 역설’이라고 부릅니다. 이 아귀의 역설은 책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짜의 삶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세태에서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 하고, 오르면 오를수록 더 오르고 싶어하니까요. 그렇게 살면 살수록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들, 예를 들면, 가족이나 벗들, 또는 구름이나 별과 같은 것들에게 무관심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그제야 깨닫습니다. 자신이 외로워할 때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돈과 권력과 명예와 같은 ‘화려함’이 자신의 외로움을 전혀 달래주지 못한다는 사실을요.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봅니다. "지금 나는 가짜의 삶에 매달려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의 진짜 삶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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