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익 태영 이엔씨 고문
이상익 태영 이엔씨 고문

한국의 현대 정치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서 시작해 끊임없이 이어져온 이념 논쟁으로 점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남북분단, 한국전쟁이라는 한국적 상황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지난 70여 년간 수많은 이념적 용어와 신조어들이 급조되고 난무한 게 사실이다. 

좌파와 우파, 좌익과 우익, 진보와 보수라는 전통적 분류 외에 중도적 진보와 중도적 보수, 진보 좌파와 보수 좌파, 좌파 진영과 보수 진영, 종북 좌파와 친일 우파, 강남 좌파라는 단어들이 만들어져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유럽에서와 같이 확고한 정치사상이나 철학에 근거하지 아니하고 그때그때 시대적 상황과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 노선이 자의적으로 명명되기 때문은 아닌지. 그런 연유로 해방 이후 수백 개의 정당이 당리당략과 특정 정치인에 따라 이합집산하고 명멸을 거듭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세계 정당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한국 정치만의 기이한 현상이 아닐까.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기본 개념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우파(右派)와 좌파(左派)의 개념 구분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직후 등장한다. 당시 우파는 권력층에 좌파는 평민, 빈곤층에 해당했다. 우파는 세습된 부, 권력, 권위를 중요시하며 기존 질서와 체제 유지를 원하고 급진적인 변화를 거부했다. 좌파는 그 정반대의 입장에 섰다. 따라서 우파는 보수적 성향을 띤 반면 좌파는 개혁적이고 변화를 추종했다.

그 이후 유럽의 좌파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념은 과거로부터 벗어나서 더 발전된, 더 진보된 것을 주장했다. 이상적인 미래 즉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의미가 결합됐다. 반대로 우파들은 좌파를 급진적, 반사회적, 반윤리적인 행동으로 간주했다. 또한 망상적이고 공허하며 비현실적, 비논리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집단으로 인식했다. 

그럼 한국 정치계는 어떠한가?  한국 정치사에서 좌파와 우파의 개념과 의미는 시기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일제강점기시절에 좌파는 무장 독립투사들이 주류를 이뤘다. 당시 그들은 1917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인 러시아혁명 이후 유럽에 대한 반제국주의 정책의 이론적 토대인 마르크스주의를 매력적인 이념으로 받아들였다. 반면 우파는 친일파로서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동조하고 순응한 조선의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아나키즘과 같은 좌파 개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광복 이후 북한은 러시아의 지휘를 받은 김일성이 그리고 남한은 미국의 영향을 배경으로 이승만이 장악하면서 분단의 길을 걸으며 좌파 대 우파,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대결의 장이 된다. 한국전쟁은 한국 정치사에서 공산주의 침략자, 빨갱이라는 새로운 색채를 덧칠하게 된다.

한편, 최근에는 좌파에서 일제치하의 무장독립운동을 높이 평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로 인해 얼마 전 좌파로 월북한 무장독립운동가 김원봉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에 반해 우파는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한 일본 장교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또한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인해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극한적인 정치적 이념 대결이 그대로 표출되기도 했다. 반일 종족주의 대 친일파로 서로를 비난하며 극심한 갈등과 마찰이 빗기도 했다. 심지어 좌파는 빨갱이, 우파는 친일파라는 프레임을 씌워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오로지 우군과 아군을 구분 짓는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을 뿐이다. 불행히 이러한 기류는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 듯하다.

기본적으로 유럽에서 우파는 좌파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었다. 좌파가 탄생한 이후 우파가 생기고 좌파의 정책에 대응한 우파의 정책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를 남북한 대치라는 특수한 여건에 있는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고 본다. 

현대 중국의 대철학자 펑유란은 철학 없는 생각이나 말은 십자가 없는 교회와 같다는 비유를 했다. 이제는 국민통합과 진정한 선진국 진입을 위해 보다 성숙하고 차원 높은 정치적 이념의 재정립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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