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와 제40대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사이의 공통점은 치매를 앓았다는 것이다. 이 병은 경과가 매우 나빠서 첫 3년은 시간 개념이 흐려지고, 그 다음 3년은 공간 개념을 잃어 가고, 이후에는 사람을 못 알아보게 된다. 그러다 궁극에는 자신까지도 망각하게 되는 슬픈 질병이다. 

치매는 노년층에게 가장 두려운 대상으로 꼽히지만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환자 수도 증가하고 있다. 65세 노인의 10%, 85세의 20%가 앓고 있는 이 질환은 2018년 국내 10대 사망 원인으로 집계됐다. 2025년에는 국내 치매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치매는 특별한 누군가의 질병이 아닌 삶의 한 부분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이 자리잡고 있다. 길게는 20년까지 병이 진행되는 만큼 간병을 가족에게만 국한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때문에 치매 진단과 치료, 돌봄서비스 등의 제도적 보완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배우 윤정희 씨의 치매 소식이 전해지며 퇴행성 뇌질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오늘 치매를 소재로 하는 영화 ‘노트북’을 소개한다.

노아 할아버지는 매일 같이 노트를 들고 와 앨리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1940년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 방학을 맞아 휴가 차 내려온 곳에서 부잣집 외동딸은 가난한 벌목공과 사랑에 빠진다. 설레고 뜨거웠던 첫사랑의 기쁨은 가을이 되기도 전에 집안의 반대로 끝나게 된다. 한 사람을 잊기에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지만 7년 만에 재회한 두 사람의 묻어 둔 감정은 여름날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야기가 끝나갈 때 즈음 흥미롭게 듣고 있던 앨리 할머니는 흐릿한 추억이라도 떠오르는 듯 눈가가 촉촉해진다. 사실 노아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는 앨리 할머니가 쓴 일기장으로, 사랑했던 시간을 잊지 않도록 치매 초기 당시 남편에게 읽어 달라고 부탁한 내용이었다. 

컨디션이 좋은 날 할머니는 짧은 시간이나마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 남편과 아이들을 기억하곤 했지만 그렇지 못한 날이 더 많았다. 그런 아내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지만 여전히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할아버지는 만족했다.  

2004년 개봉한 영화 ‘노트북’은 2016년 재개봉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집안 반대로 헤어지지만 다시 만나 사랑을 완성한다는 익숙한 이야기는 치매에 걸린 아내에 대한 순애보적 사랑으로 애틋함을 더했다. 여기에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교차 구성으로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증세가 호전되지 않음을 알지만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었는지를 계속 이야기해 주는 할아버지의 진심은 할머니에게 켜켜이 스며들었다. 

과학이 닿지 않는 곳에 사랑의 기적이 행해지길 바라는 것이 미련한 꿈일 수 있겠지만 윤정희 씨 가족도 젊은 시절 영화 촬영 당시를 기억하는 어머니에게 팬들의 사랑의 편지가 필요하다는 인터뷰를 남겼다. 기억은 흐려질지라도 사랑은 바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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